석이버섯
/이명
전등사 암자 바위에 귀가 돋아났다
귀는 빛바랜 불경처럼 구겨진 채 듬성듬성 솟아 있었다
바람은 돌개바람,
연가시에 감염된 귀뚜라미는 물로 뛰어들고
추녀 위 나무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후일담이 궁금한 담쟁이넝쿨이 바위를 타고 오르고
귀는 풍문으로 배를 채우고
염불 소리에 바위는 스스로 깊다
당신은 너무 멀리 왔다고 산그늘이 되어 운다
-시집 ‘벽암과 놀다’
전등사 하면 대웅전 처마 밑 네 귀퉁이를 떠받치고 벌 받는 나부상에 대한 전설이 떠오른다. 사실 여부를 떠나 경건함을 넘어 살짝 미소가 떠오르게 되는, 골계미가 돋보이는 전설이다. 시인은 전등사 바위에 돋은 석이버섯이 귀를 닮은 것에 착안해 이 전설을 생각해냈으리라. 그리고 연가시를 유추했으리라. 연가시는 육식곤충에 기생하여 성충이 되면 숙주를 조종하는 신경전달물질을 생성, 물로 유인해 빠뜨림으로써 곤충의 몸을 빠져나온다고 한다. 전설에 등장하는 주모야 말로 그 연가시가 아닐까. 도편수를 꾀어 파멸에 이르게 하는 그 치명적 속임수와 닮지 않았는가. 시인은 그 설화를 듣기에 바쁜 석이버섯의 귀가 돼 보았나 보다. 그리고 후일담이 궁금하여 담쟁이넝쿨이 되어 바위를 타올라 보고도 싶었나 보다. 검은 귀를 달고 풍문으로 배를 채운 그 바위를 보러 가야겠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