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
/박후기
개펄은 바다가 되기도 하지만,
꼬막 밭이 되기도 한다
콩 싹이 껍질을 벗고 떡잎을 내밀듯
꼬막들도 껍질을 벌려
새 혀 같은 싹을 틔운다
껍질만 남은 노인들이
호미처럼 등을 구부려
꼬막을 캐고 있다
가끔
새가 날아와 꼬막을 쪼아먹기도 하고,
자식들이 속만 파먹고 버린 가난한 노인들이
껍데기만 남은 꼬막과 함께
바닷가를 떠다니기도 한다
- 박후기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껍질의 후생이다. 우리는 껍질 속에서 알맹이로 잉태되었으며 껍질이 주는 먹이를 먹고 자라왔다. 그리고 그 보살핌 속에서 벗어나 또 다른 껍질이 되기 위한 길을 걷는다. 알맹이가 껍질이 되어가는 것이다. 진정한 껍질이 되기 위해 알맹이가 알맹이를 벗는 것이다. 이렇듯 껍질과 알맹이는 우리네 삶을 총망라한다. 즉 껍질이 우리이고 알맹이가 우리인 것이다. 우리네 삶은 바다가 터전이다. 그 바다가 드러내 놓은 갯벌에는 온갖 생물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중 꼬막들도 콩 싹이 껍질을 벗고 떡잎을 내밀 듯 새 혀 같은 싹을 틔운다. 그리고 노인들은 호미처럼 등을 구부려 그러한 꼬막을 캔다. 이렇듯 젊은이들이 없는 바닷가에는 자식들에게 속을 다 파 먹힌 노인들만 있다. 꼬막을 캐고 조개를 캐고 가끔 새가 날아와 꼬막을 쪼아 먹듯, 떠나간 자식들은 한 번씩 찾아와 노인들의 그나마 남은 속을 파먹는다. 그래도 흔쾌히 내어주는 껍질들. 그 껍질이 있어 알맹이가 철이 들어가고 속이 꽉 찬 껍질이 되는 것이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