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칼날
/신지혜
새벽 뒤뜰에서 보았습니다
이슬 한 방울 제 등짝에 짊어지고
온몸에 잔뜩 힘을 모은
풀잎 한 가닥 보았습니다
어찌나 안간힘을 쓰던지
이파리 온몸이 풀 먹인 듯 빳빳합니다
저 이슬 한 방울이 대체 무엇이길래
제 몸 휘는 것도 모자라
온 아침을 팽팽하게 다 휘게 하는 걸까요
나 가만히 짐작해보았습니다. 언제나
날 떠받치고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그의 마음도 그렇겠지요
나 오늘은
저 조용한 이슬 속에 들어
둥글고 편안한 그의 등짝에 납작 엎드려
그의 숨 막히는 긴장을 가늠해야겠습니다.
- 신지혜 시집 ‘밑줄’
이미 익숙해져서, 그리고 그 익숙함에 젖어버려서 어떠한 것을 당연시할 때가 있다. 생활의 안온함이 나와 가장 가까운 이의 최선을 다하는 일로 얻어지는 것임에도, 그 수고를 깊게 헤아려보지 않는다. 그러다 우리는 어느 순간 마주치는 풍경이나 어떠한 일로 인해 그동안의 무심함을 깨닫는다. 화자는 어느 날 새벽 뒤뜰에 나가 등에 내려앉아 있는 이슬 한 방울을 위해 전신이 빳빳한 풀잎을 본다. 그리고 그 풀잎 한 장이 온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살고 있는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음을 느낀다, 저 풀잎처럼 저 이슬방울처럼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는 지금껏 나에게 둥글고 편안한 등짝을 내어주던 사람이다.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듯 늘 내 곁에 있어 정말 소중한 누군가를 잊고 사는 우리는 종종 그 당연시함으로부터 벗어날 줄 아는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