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박소원
(……)
어젯밤 꿈속에서만 얼굴 보는
형제를 만났습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탓일까
오후가 되어도 목소리가 안 나옵니다
(……)
나에게는
캄캄한 곳에서만
주고받는 말들이 있습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만
기어이 잡는 손이 있습니다
내 말들은
깊은 어둠 속에서만
황홀히 드러났다 이내 사라집니다
- 박소원 시집 ‘울음을 손질하다’
대외적으로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좌우로 나누어진 격한 이념의 대립 속에서 그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우리는 운신의 폭을 좁혀야 한다. 직장에서도 집안에서도 경제문제는 우리의 정신을 옥죈다. 새로운 IT 기술과 AI의 등장은 기존의 ‘너와 나’의 관계를 흔들고 있다. 이 혼돈 속에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와 나’의 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다. 캄캄한 어둠 속에 혼자 있어보자. 그 어둠 속에서 내가 나에게 내미는 손이 있나보자. 그 손을 잡고, 촛불이라도 켜 놓고, ‘나’의 말들을 들려주자. ‘나’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들어보자.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