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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일의 오지랖]미국 다문화주의의 종언을 기다린다

 

 

 

 

 

미국이 난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사회혼란을 겪고 있다. 방송에서는 상점을 약탈하는 시위대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시위대의 자정 노력에 의해 약탈 행위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약탈자가 대부분 흑인 중심의 유색인종이라는 것이고, 여기에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보였던 미국이라는 국가의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인종차별주의가 2020년에 다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종차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노예제 폐지를 두고 격돌했던 남북전쟁 이후에 인종차별이 더 공고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인 원인이 있었다.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남부의 7개 주는 미연방에서 탈퇴하였지만, 테네시주의 앤드류 존슨은 링컨을 지지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남북전쟁 중이던 1864년 링컨이 재선에 도전하였고 민주당의 앤드류 존슨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발탁해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1865년 4월 링컨이 존 윌크스 부스에게 저격을 당해 사망하였고, 앤드류 존슨이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남부 출신의 앤드류 존슨은 남부 주들이 해방 노예의 권리를 제한하는 주(州) 법안을 만들어도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데, 이는 노예해방 전쟁이었던 남북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남부 지역이 오랫동안 흑인에 대한 차별이 상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화 ‘그린북’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영화는 천재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 박사의 운전기사로 고용된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가 미국 남부 지역으로 콘서트투어를 떠나면서 겪게 되는 차별과 혐오를 그리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흑인이 미국 남부를 여행할 때 출입 가능한 레스토랑과 숙박업소를 알려주는 책이다. 현실에서도 ‘흑인’ 아버지에서 ‘흑인’ 아들로 대물림 되었던 책! ‘그린북’은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이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증거물이었으며, 과거의 유물쯤으로 치부되었던 그 책의 음울함은 아직도 미국사회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미국의 다문화주의를 표현할 때 ‘용광로(Melting Pot)’ 모델이라고 한다. 거대한 사회인 용광로에 다양한 민족을 ‘미국’이라는 가치로 녹여낸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백인 주류 문화를 중심으로 소수 민족과 유색인종을 대상화하여 통합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주류 사회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로 대변된다. 이 용어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수 디그비 발트첼(E. Digby Baltzell)이 그의 책(The Protestant Establishment: Aristocracy & Caste in America. 1964년)에서 언급하면서 대중화되었는데, 사회학적, 문화적, 민족지칭어라고 할 수 있다. WASP는 백인이면서 앵글로-색슨 민족이며 개신교도를 일컫는데, 미국의 다문화정책은 개신교 신자인 백인의 정체성을 근간으로 ‘위대한 미국’의 건설만이 목표였고 이민족이나 흑인의 다양성은 존중받지 못하였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위한 정책은 북부지역에서 조차 보잘 것 없었다. 피츠버그에서는 백인과 흑인학생이 함께 교육받지 못했고 로드 아일앤드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금지되었었다. 이와 같은 차별과 배제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교육 받을 권리에서 멀어져 있다. 2019년 미국의 4학년, 8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전국학업성취평가(NAEP)를 보면 흑인 및 히스패닉 계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역사적으로 지속되면서 흑인들은 그들의 정체성이 백인 주류사회와는 다른 ‘터그라이프(Thug life)’라고 생각한다. 터그라이프는 폭력을 일삼는, 쿨(cool)한, 얽매이지 않는 등의 의미로 해석 할 수 있지만 사실은 백인 주류 사회를 향한 저항이자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으며 스스로의 삶을 세상에 내던져버린 막장의 삶이기도 하다.

2020년 오늘의 미국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청산하고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을 것인가 아니면 백인 중심의 사회를 고집하면서 반복되는 사회혼란을 감내할 것인가. 과연 트럼프의 트위터는 어떤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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