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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비우기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는 저 물건들. 도대체 얼마나 내 집에서 기거한 물건들인지 하나같이 몰골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수십 년 모아두었던 다이어리, 아이들 유치원에서 받은 미술상에 그 작품까지, 더하여 삐뚤빼뚤 써 둔 일기, 태권도 도복에 에어컨 실외기까지. 언젠가 쓸 것 같아 칸칸이 채워 두었던 지금은 쓰레기로 남겨진 물건, 물건, 물건들의 배출. 며칠 째 옷이며 책이며 가구 나부랭이들이 들려 나가고 있는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코로나19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거실 한 쪽 벽을 가득 메운 책들이 가장 먼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주객이 전도된 이 현상. 처음엔 사람이 주인이었던 이 집이 서서히 물건들의 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니. 이건 이래서 필요하고 저건 저래서 필요하고 갖가지 이유를 달며 사들이거나 버리지 못한 물건들을 마침내 몰아낼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온 가족이 동원된 버리는 작업은 어쩌면 설렘이었다. 마치 비밀의 상자처럼 쌓아두었던 박스가 하나하나씩 열릴 때마다 우르르 쏟아지는 추억들. 하나같이 사연을 달고 나오는 물건들의 중요도에 따라 남길 물건과 버려야할 물건을 분류하다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고 마치 이사하는 날처럼 짜장면을 시키고 식사를 하는 내내 이어지는 옛 물건과의 추억담까지. 그렇게 며칠을 보낸 다음, 마침내 드러난 집이야말로 제대로 된 훤칠한 내 집의 모습을 갖출 수가 있었다.

 

이렇게 멋진 집이었다니. 그저 쌓인, 이제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드러냈을 뿐인데 집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집이 얼마나 답답했을까도 싶었다. 그 많은 짐들을 끌어안고 있었으니 말이다. 집도 숨 쉴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집이 숨을 쉰다는 건 내가 숨을 쉬는 것과도 이어지는 것이다. 집의 구석구석 훤하게 비워진 공간을 보면서 이렇게 속이 후련함을 느낄 수 있다니. 넉넉하게 숨 쉴 공간을 비워둔 집이야말로 그 집에 기거하는 사람에게도 비워둔 만큼의 그 여유를 나누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산다는 건 어쩌면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물건일 수도 있고 걱정일수도 있고 세월 따라 늘어가는 주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삶의 연륜만큼이나 넉넉해지는 지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쌓아가는 것들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지나치게 쌓기만 하다 보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니 말이다. 집안 가득 쌓인 짐을 정리하면서 집이든 사람이든 환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조금 조금씩 드러낼 줄 아는 ‘비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 따뜻한 녹차 한 잔을 앞에 놓고 환하게 열리기 시작하는 동쪽 하늘을 보고 있다. 집은 훤하게 비웠으되 아직 비우지 못한 마음을 마침내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빈틈없이 채워져 도대체 숨 쉴 공간이 없는, 눈 닦고 찾아봐도 여유라곤 찾을 길 없는 그 답답한 마음속을 말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로 시작되는 수많은 요구들, ‘이것도 하고 싶다 저것도 하고 싶다’로 연결되는 욕심 욕심을 어떻게 비울 수 있을까.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차만 음미하고 있지만 어쨌든 ‘마음 비우는 일’그 ‘비우기’도 시작해 보고 싶은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