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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미국에서 올해 최고의 문학으로 선정된 북한의 페미니즘 소설

 

 

미국의 라이브러리 저널이 2020년 세계최고의 책을 발표했다. 라이브러리 저널은 매년 12월에 분야별 세계 최고의 책을 선정해왔다.

 

라이브러리 저널은 올해 문학분야 세계최고의 책으로 한국어 소설 ‘벗’을 선정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어 소설로는 최초로 세계최고의 문학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 소식이 국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미국의 저널이 한국어 소설을 최고의 문학으로 선정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벗’을 쓴 주인공이 남한이 아닌 북한의 작가 백남룡이었기 때문이다.

 

백남룡은 1949년 함흥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0년간 기계공장에서 일한 뒤 김일성종합대학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하고 작가의 길에 들어선 예사롭지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1979년 《조선문학》에 단편 ‘복무자들’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백남룡은 장편소설 ‘벗’과 ‘60년 후’를 발표하며 북한의 대표작가로 발돋움했다.

 

한때 북한을 악의 축으로까지 규정했던 미국에서 세계최고의 문학으로 선정된 ‘벗’에 대한 궁금증이 국제적인 관심을 더욱 키웠다. 라이브러리 저널은 ‘벗’이 ‘북한 정부의 승인을 받은 작품으로 자주 미묘한 프로파간다를 보여주기도 한다’면서도 ‘집단주의 체제의 일상을 들여다볼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히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벗’은 공장노동자에서 예술단 가수로 변신한 여주인공이 여전히 기계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북한에서 최대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작품이다. 이 소설은 북한 청춘남녀의 사랑과 연애, 결혼과 가정생활, 육아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부부의 불화와 이혼절차를 통해 북한 사회의 이면과 관료주의자들의 폐해까지 드러내 보이는 드물고도 특별한 작품이다. ‘가정’이란 드라마로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남쪽 독자들에게 ‘벗’의 가장 인상적인 측면은 북한의 페미니즘과 사법제도일 것 같다.

 

예술단의 화려한 가수로 성공한 여성이 허영에 빠져 우직하게 공장에서 일에만 몰두하는 남편을 우습게 여긴다며 이혼의 귀책사유를 아내에게 물을 것 같지만, 백남룡은 그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소설이 1980년대 후반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선구적인 페미니즘 문학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검찰과 사법개혁을 둘러싼 분란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 이혼소송을 다루는 북한 판사의 모습은 제도 이전에 사람을 다루는 법조인의 자질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리 선진적인 제도도 그것에 종사하는 사람에 따라 혐오스러운 괴물로 변질될 수 있으며 아무리 세련된 논리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으면 폭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어쩌면 지나치게 소박하고 따뜻해서 촌스럽다고 여길 수 있는 백남룡 소설의 가장 큰 매혹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은 언어가 횡행하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힘일 것이다. 바로 그 힘이 가장 세련된 문학을 상찬하는 프랑스에서 ‘벗’을 가장 많이 팔린 한국어 소설로 만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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