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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달걀을 깨자

 

1. 쌍둥이 배구선수가 학폭 가해자였다는 폭로로 소란하다. 중학생 때부터 동료 여럿을 때리고 부모를 욕하고 돈을 뜯고 칼로 협박도 했다니 기가 막힌다. 대회 나가 성적만 내면 모든 게 용서되는 작금의 엘리트 학교 체육이 이런 괴물을 빚은 게 아닌가. 어린 학생에게 사회성과 인성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부모와 지도자들도 호되게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걸 관행이란 이름으로 용인하고 어쩌면 조장하기도 했던, 금메달 지상주의 대한민국 전체가 반성할 일이다. 쌍둥이의 악행이 고발된 뒤로 다시 또 다른 선수 두 명이 학폭 가해자로 지목됐다. 고환을 걷어차인 피해자는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사과는커녕 ‘부랄 터진 놈’이란 모욕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학생 때 저지른 잘못과 뉘우치지 않는 모양새는 남녀가 동일했는데, 폭로 이후의 대처는 약간 달랐다. 쌍둥이와 부모, 구단 등 관계자들은 짧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침묵 속에 숨었고(무기한 출전정지라지만, 그 무기한이 ‘언제고 때만 되면’이란 뜻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다른 선수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남은 기간 출전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여론도 조금 다른 듯하다. 쌍둥이는 영구제명이 공공연하게 거론되지만, 남자 선수들에겐 유보적이다. 결국 대중은 잘못도 중요하지만, 가해자들의 반성하는 태도를 더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은 게 아닌가 싶다.

 

2.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나경원 전 의원에겐 원정출산이란 의혹이 있었다. 그녀가 입원했다는 라치몬트 산후조리원 하루 입원비가 얼마라는 것까지 뉴스를 타면서 원정출산은 기정사실이 됐다. 나 후보가 결국 출생증명서와 출입국 기록을 공개하면서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필자는 발표 당시 출생증명서 위조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 간 큰 의사는 없다고 말했는데, 반론도 만만찮았다. 세상엔 별별 의사가 다 있고, 나경원 정도의 권력이라면 위조도 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그때 당신의 우려와 의혹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위조와 거짓을 보아왔기 때문에.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아무리 집권당 원내총무 출신 4선 의원이라 해도 출생증명서라는 공문서를 위조할 수는 없는 세상이 됐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흘린 피와 땀, 그 많은 희생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의심할 수는 있지만, 그런 의심을 이해하지만, 의혹만으로 사람을 단죄할 수는 없다. 내가 김어준을 마땅찮게 생각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기가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면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 그러지 않기 때문에 나는 김어준을 언론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우리 편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3. 칼럼을 쓰는 사이 백기완 선생 부음을 들었다. 민주운동 1세대 어른들이 모두 돌아가셨구나 싶은 비통함과 동시에 리영희, 신영복, 백기완,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을 되새겨 본다. 민주화 운동은 결국 사회변혁운동이고, 그렇다면 운동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운동은 기념되어서도 안 되고, 박제될 수도 없다. 학폭 가해자들의 태도에 주목하면서 엘리트 체육의 대대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록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증거를 제시하면 수용하고 의혹을 거두는 것이 이 시대의 작은 운동은 아닐까. 오믈렛을 만들려면 달걀을 깨야 한다는 말이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온다. 우리가 깨야 할 달걀은 또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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