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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화양연화(花樣年華) 2

 

K선배가 손을 잡아끌었다. 신세계백화점과 한국은행 사이 로터리였다. S대 시위대가 남산 쪽에서 밀고 내려왔다. 그러나 나는 순간 겁에 질려있었다. 이미 정보가 샌 듯 로터리에는 백골단과 전경이 쫙 깔려있었다.

 

“광주학살! 진상규명!”

“독재타도! 민주쟁취!”

 

로터리까지 시위대는 밀려왔고 우리는 대오로 들어갔다. ‘펑 펑’ 최루탄이 터졌고 청 커버를 입은 백골단이 달려왔다. 대오는 금방 깨졌다. 그때 K선배와 잡은 손을 놓쳤다. 한국은행 쪽 골목으로 도망쳤다. 숨이 막혀 컥컥거리고 있는데 백골단이 다가와 곤봉으로 등짝을 때렸다.

 

“아니에요. 나는 대학생 아니에요. 재수생이에요.”

 

나는 변명했고 다행히 백골단은 나를 보내주었다. 그때 10여 미터 앞에서 질질 끌려가는 K선배가 보였다. 곤봉에 머리를 맞았는지 머리에 피가 흥건했다. 상의가 거의 벗겨져서 앙상한 갈비뼈가 속옷 사이로 보였다. 안경은 벗겨졌고 기절한 상태였다. 나는 도망갔다. 유다가 예수를 부정한 것처럼. 명동거리를 멍한 상태로 휘적휘적 걷다가 다시 한국은행 앞으로 가 보았다. 상황은 정리되었다. 드문드문 전경이 서 있었다. K선배가 잡혔던 자리에 가보았다. K선배의 검정색 뿔테안경이 다리가 부러진 채로 버려져 있었다. 눈물이 왈칵 났다.

 

가투 후에 모이기로 되어있는 중국집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너무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나는 죄지은 심정으로 K선배가 잡혔음을 보고했다. K선배와 나를 가투로 보낸 C선배는 좌불안석이었다. 중국집이 문 닫을 시간까지도 K선배는 풀려나지 않았다. 우리는 K선배의 자취방으로 갔다. C선배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밤새 숨죽여 울었다. 나는 차마 울지 못하고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새벽 첫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대문 옆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 내 손에는 K선배의 깨진 안경이 들려있었다. 그때 대문이 삐걱거리며 한명이 들어왔다. K선배였다. 방문이 열리고 C선배의 함성과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야 왜 이제야 왔어. 많이 안 다쳤어?”

“괜찮아요. 뭐 이걸 가지고….”

“아이고 내 새끼!”

“형, 나 배고파.”

“그래그래. 아줌마 집으로 가자.”

 

나는 방문 앞에 서있었다. K선배가 울먹이며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가자 막걸리 한잔 하러 가자.”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K선배가 머리를 많이 다쳐서 담당이 골치 아프니 관할경찰서로 이감하지 않고 새벽에야 훈방한 모양이다.

 

“훈방할 거면 택시비라도 줘야지. 안 그냐?”

 

그 와중에도 K선배는 너스레를 떨었다. 버스는 끊기고 택시비는 없고 남대문에서 왕십리까지 두 시간 넘게 걸어왔다고 했다. 우리는 새벽 쓰린 속에 막걸리를 부었다. 생두부도 우걱우걱 먹었다.

 

*

 

이제 한 학년 아래 남자후배를 ‘내 새끼’ 라고 부르던 그 여자선배는 이 세상에 없다. 나는 그 선배를 인터넷 뉴스 기사의 먼 나라 미얀마에서 발견했다. 세 손가락을 곧게 뻗어 하늘을 가리키는 미얀마 여학생 사진에서 C선배를 다시 만났다. C선배와 K선배 그리고 내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들이 꿈꾸던 인생의 화려한 시기는 지나갔다.

 

“미얀마 민주주의 투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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