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한텐 아기가 있었어요. 갑자기 사라졌어요.”
경기도극단이 연극 ‘파묻힌 아이’를 통해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건넨다.
25일 경기아트센터에서는 경기도극단의 2021 레퍼토리 시즌 ‘파묻힌 아이’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경기도극단 한태숙 예술감독과 배우 손병호, 예수정, 윤재웅, 정다운, 황성연, 정지영, 한범희가 참석했다.
경기도극단 한태숙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은 ‘파묻힌 아이’는 가족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샘 셰퍼드의 ‘BURIED CHILD’를 원작으로 한다.
작가는 원시적이며 무책임한 인물들과 그들의 야만적인 시간 뒤에 남은 저주받은 인생을 극적으로 표현했으며, 이 작품은 1979년 미국의 최고 문학상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파묻힌 아이’는 아들과 어머니의 충동적 관계를 다룬다. 둘 사이에서 인정할 수 없는 아이가 탄생하자 집안의 가장인 닷지는 아이를 죽여 뒷마당에 매장한다. 아이를 파묻은 땅은 황폐해졌고 오랜 시간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어느날 손자라고 말하는 빈스와 여자친구 셸리가 이 집으로 찾아오고, 이들의 방문에 닷지는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고백한다.
이날 무대 위 틸든 역으로 분한 배우 윤재웅은 “우리한텐 아주 작은 아기가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말했다. 격앙된 목소리의 그는 아기를 왜 파묻어버렸는지 아는 사람은 아버지뿐이라고 닷지를 가리킨다.
닷지 역의 배우 손병호가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말해버리는 게 낫겠다”고 하자 그의 아내 핼리 역의 예수정은 말하는 순간 고통을 주겠다며 반발한다. 시연장면 내내 긴장감이 고조됐다.
무대가 끝난 뒤 셸리로 열연을 펼친 정지영은 “영유아 학대나 믿을 수 없는 연극적인 일이 실제 이뤄지고 있는데 빗대보니까 충분히 일어날 수 있구나 싶었다. 지금 시대에 해야할 연극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미국정식라이선스 계약을 한 ‘파묻힌 아이’는 시청각적 장치와 표현, 괴이한 시선이 가득한 무대 또한 볼거리다. 실제 무대에 내리는 빗줄기와 무대 뒤 배경을 가득 채운 옥수수밭이 시각적으로 새로움을 선사한다.
한태숙 감독은 “실제 비가 내리고 옥수수밭으로 꾸민 무대 등을 통해 미술적으로 극대화한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사 없이도 미술적인 접근에서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어떤 고민을 무대에 풀어놓을까 구상하던 중 읽게 된 책 한 권이 한태숙 감독표 ‘파묻힌 아이’를 탄생케 했다. 한 감독은 “극단을 설득할 필요도 없이 풀어내고 싶은 연출 의도를 보였을 때 연극적인 힘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관객들에게 다소 어려운 주제로 다가갈 수 있다는 시선에 대해 한 감독은 “관객들의 거부감이나 감정적인 게 염려됐지만 세게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안을 들여다볼 수 있고, 말해야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예수정은 자신이 맡은 핼리 역에 매료돼 흠모하는 매일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에는 ‘이걸 내가 어떻게 하나’라고 했는데 작품을 분석하고 연습하면서 핼리의 삶을 들여다보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근친상간, 목사님과의 불륜 등 모든걸 떠나서 생명체로서 생명의 욕구를 거부하기 싫어하는 배우 예수정보다 질 좋은 삶을 살고 있는 핼리의 삶을 흠모한다”고 말했다.
이어 손병호는 “아버지, 남편의 입장으로서 닷지 역에 임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걸 감싸서 바라보려고 애쓰며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극단 배우들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연극을 할 수 있다는 기회가 생겨 기쁘다”며 “얽히고 섥힌 게 많은데 관객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한태숙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며 웃어보였다.
한편, 만 13세 이상 관람가인 ‘파묻힌 아이’는 27일부터 6월 6일까지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평일에는 오후 8시, 토~일요일은 오후 4시에 공연이 진행된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