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 중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마스크 착용은 물론, 다중시설 이용이 금지됐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려워졌다. 그간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을 하지 못하게 돼서야 우리는 그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타인과 접촉을 최대한 막기 위한 일련의 행동들은 혼자서 운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장애인 체육의 경우 실내에서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다중시설 이용이 금지됐을 당시 운동을 할 공간 자체가 없었다.
장애인 중 후천적 장애인의 비율은 90%나 될 정도로 많다. 교통사고 및 산업재해 등 불의의 사고로 인한 장애, 유전적 질병에 의한 장애 등 여러 이유로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다.
어느 누구도 장애인이 되고 싶어 장애인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장애를 겪으며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장애를 극복해 인간 승리를 달성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운동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갖고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선수들을 소개한다.
경기도장애인체육회 직장운동부에 소속돼 볼링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영진 선수. 그는 유전병으로 인해 시각장애를 갖게 된 선수다.
그는 “태어날 때는 몰랐다. 어머니가 눈이 좋지 않은데 유전병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26살부터 앞이 안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병원을 가보니 유전병이란 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방에서 나오는 것조차도 못했다. 의욕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침대에만 계속 누워있었다. 밥도 안 먹고 그렇게 살았었다”면서 “단순히 눈이 안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보이다가 갑자기 안 보이게 되니 심리적으로 힘든 것이 컸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만큼 힘들었다는 김 선수는 볼링을 통해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김 선수는 “안마를 배우는 곳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볼링동호회가 있었다. 주변의 권유로 동호회에 나가게 된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며 “볼링을 시작하고 성격이 많이 밝아졌다. 사람들하고도 어울리고, 시각장애인들끼리 볼링을 치며 동질감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또 “시작장애인은 완전 보이지 않는 전맹과 조금이라도 보이는 약시로 구분된다. 동호회에 가면 실수를 해도 서로 이해해줄 뿐만 아니라 약시인 동료들이 전맹 동료에게 도움도 많이 준다.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김 선수는 ‘이왕 연습하는 거 제대로 하자’란 생각으로 직장운동부에 입단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훈련을 할 때보다 더욱 연습에 매진할 수 있어 좋다며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선수로서 국가대표에 선발돼 세계대회 우승이 목표다. 아시안게임에 장애인 볼링 종목이 있어 출전하고 싶다”며 “볼링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관심 있고 소질이 있는 스포츠를 하게 된다면 심리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후천적 장애인들은 몸이 불편한 것보다 심리적으로 좋지 않다. 운동을 통해 대인관계도 넓히고 움직이다 보면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을 전했다.
탁구선수로 활약한 최향란 선수 역시 운동으로 힘든 시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교통사고로 인해 척수장애를 판정받은 최 선수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살고 싶지 않은 충격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 역시 주변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1년 가까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진행했다. 퇴원 후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지인이 탁구를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다”며 “친구를 따라갔는데 처음엔 어려웠다. 그렇지만 나름 재미도 있고 재활의 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활 목적으로 시작한 탁구였지만 그녀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최향란 선수는 “장애가 나아지진 않았지만 매일 누워만 있던 삶에서 운동을 통해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운전도 배웠고 밖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정신적으로도 매일 우울해하고만 있었는데 굉장히 건강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처음 승리한 경기가 아직도 눈에 훤하다는 최 선수는 “운동선수로서의 목표는 올림픽 무대였다. 하지만 현재 10년 넘게 선수 생활을 했고 나이도 있어 올림픽 무대는 포기”라면서 “생활체육으로 후배들을 가르쳐주고 함께 운동하는 선수들과 오랫동안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운동의 효과를 본 최향란 선수는 끝으로 “장애인 스포츠가 점점 인식과 지원도 좋아지고 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목표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만, 처음 스포츠를 시작하는데 겁을 내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어떻게 불편한 몸으로 매일 가서 운동을 하겠냐는 생각 때문에 시도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용기를 내 밖으로 나오고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산업재해로 하반신 마비를 갖게 됐다는 김기홍 펜싱 감독도 운동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강조했다.
넘어지는 기계에 깔려 허리가 부러져 장애를 겪게 된 그는 “처음에는 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간 치료를 해보려 노력했는데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까란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다치기 전 하반신 마비를 겪고 있는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가 같이 운동을 해보자고 권유했는데, 솔직히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펜싱을 하는 것을 보니 멋있어 보였다. 2002년부터 시작했고, 그해 부산아시안게임에 출전하게 되면서 선수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펜싱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그는 “다치고 나서 낙담을 많이 해 움직이지 않았는데, 운동으로 또 다른 방향을 보게 됐다. 휠체어에 앉아서 이런 운동을 하면서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큰 대회에서 성적을 거두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 운동도 열심히 하게 됐고, 나이가 들면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며 “계획에 따르다 보니 20년 정도 선수 생활을 했고, 지도자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이어 “지도자로서 목표는 경기도에서 국가대표 선수를 키우는 것이다. 우수한 선수를 키워 대표선수로 보내는 중간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후천적 장애를 겪어 비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리고 운동을 권해 또 다른 질 높은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며 “다쳤다고 절망하지 말고 또 다른 제2의 인생이 있으니 희망을 갖고 뭐든 도전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김기홍 감독과 김영진 선수, 최향란 선수의 말처럼 정신적으로 힘들어 희망을 잃는 사람이 많다. 그들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그들은 용기를 내 도전했고,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여전히 절망에 빠진 후천적 장애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도 운동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 경기신문 = 김도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