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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11. 복정동-우물에서 복이 샘솟다


성남시 복정동(福井洞)은 복이 샘솟는 우물이 있었던 마을이다. 복(福)우물은 연일 정씨의 큰 기와집에 있었던 우물이다. 연일 정씨 가문이 번창하자 그 집 우물을 복이 많은 집 우물이라 해 ‘복우물’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세조가 사육신과 그 관련자를 처형하던 무렵에 정호(鄭顥)라는 선비가 가족들을 데리고 달아나다가 복정동 정수장 뒤 산비탈 깊은 산중에 이르렀다. 지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세종의 일곱 번째 아들 평원대군이 꿈에 나타나 머지않아 나라가 안정되면 사면될 것이니 방황하지 말고 이곳 명당에 터를 잡고 살라고 했다.

 

그리고 영장산 꼭대기에 시신의 뼈가 묻히지 않도록 당부하고 지금 있는 곳에 깊은 샘을 파면 10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복샘이 되고, 자손 대대로 가문이 번창하리라고 일러줬다. 복정동 영장산의 망경암이 평원대군과 제안대군 그리고 대한제국 안녕을 기원했던 사찰이다.

 

정호의 아들 정세경은 효자로 소문났는데, 한평생 길쌈으로 가문을 일으킨 어머니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금 베틀과 은 베틀을 마련하여 어머니 영전에 바쳤고, 훗날 가보가 돼 자손대대로 전해졌다.

 

정호 5대손 정립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게 되자 머슴이 이웃 마을의 몰락한 세도가에게 돈을 받고 영장산의 비밀과 금베틀이 있음을 알려줬다. 비밀을 알게 된 그 세도가는 영장산 정상에 시신의 뼈를 묻었다. 그러자 정립은 딸 하나만 낳고 가문이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정립은 1624년에 일본 도쿠가와 습위식에 사신으로 가서 임진왜란 때 끌려간 우리 동포 146명을 데리고 돌아온 외교활동가였다. 외동딸을 홍천 현감을 지낸 윤경지(尹敬之)에게 출가시켜 딸·사위와 복정리에 함께 살다가 1629년에 중풍이 걸려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병자호란 때 정립의 부인 홍씨가 금베틀을 복우물에 집어넣었는데 머슴이 그 장면을 목격하였다. 머슴이 몰래 금 베틀을 꺼내러 복우물에 들어가는 순간 천둥이 치며 우물이 무너져 머슴은 죽고 말았다. 그 이후 이 집안은 폐허로 변했고 금 베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우물은 재물 복이 샘솟는 것을 상징하고,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 복정동은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고장이다. 고려시대 거란군 침입 때 강감찬 장군과 함께 귀주대첩을 이끈 강민첨(963~1021) 장군이 있었고, 세종 때 청백리이며 명재상인 류관(柳寬) 아들로 형조판서를 지낸 류계문(柳季聞)이 있다. 우의정 류관은 원래 이름이 관(觀)이었는데, 그 아들 계문을 경기관찰사에 임명했더니 관직명이 아버지의 이름을 침범한다고 해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이에 임금이 '觀'자를 '寬'자로 고치게 하고 즉시 부임하도록 했다. 구한말 대문장가이며 개화사상가였던 강위(姜瑋)도 복정동 출신이다.

 

 

우물은 그 물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복을 준다. 경남 의령 삼성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생가 안채와 바깥채 우물이 유명하다. 가까운 금토동 제2테크노밸리 사업 구역 내의 최소한 200년이 넘은 고택에도 명당 우물 넷이 있다. 이 고택 우물의 주인이던 할머니는 102세까지 장수했고, 누구라고 하면 알 수 있는 재계의 큰 인물도 이 고택에서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이 고택은 곧 철거될 위기에 처해 있다.

 

 

복정동에는 가천대학교와 국제학교 등 인재양성 기관이 있고, 복우물 자리에 위치한 복정동 정수장 물을 사용하는 성남시민들에게도 큰 복이 샘솟을 것이라 생각한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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