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3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15. 성남시의 발상지 성남동


지명은 여러 지역에서 동일한 것이 다수 있는데, 특히 성남(城南)은 성의 남쪽이라는 뜻이어서 안성, 충주, 대전, 강릉, 삼척, 울산 등 여러 곳에 성남동이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성남동 지역은 성남시 승격 이전에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서 가장 먼저 개척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성남동이라 부르게 됐다. 이곳은 1968년 5월에 발표된 광주대단지 개발 이전인 1961년부터 예비역 대령 김창숙이 재향군인 50여 명으로 조직한 ‘모란개척단’이 단대천 제방 쌓기와 모란장 개설, 모란중학원과 모란우체국 설립 등 '자발적 잘 살아보기 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성남시 승격 때 탄리(炭里) 일부와 수진리, 단대리 및 하대원리의 일부 지역을 합쳐 성남동으로 분리 독립됐다. 5일장인 모란장과 상설시장인 모란시장과 성호시장이 유명하다. 1978년의 ‘고추파동’은 모란장을 더욱 유명하게 하였다. 특히 성남동은 성남중앙초등학교, 성남중, 성일중, 성일여중, 성남고, 성일고, 성남여고, 동광중, 동광고, 성일정보고 등이 밀집해 전국에서 보기 드문 학교촌이 형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밖에 중원구청, 중원도서관, 성남청년회의소,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성남IC, 도로원표, 복개된 도로 밑으로 대원천이 흐른다.
 
성남동에는 수 많은 사연들이 전해오고 있다. 광주대단지 시절에 이 지역의 월동대책에서 중요했던 동원연탄 하치장이 있었는데, 1982년에 검정색 늑대 2마리가 나타나 토끼 2마리를 잡아먹고 남한산성 쪽으로 사라지는 일이 있었고, 1980년 10월 22일 있었던 헌법개정 국민투표 하던 날 출생한 아들 이름을 ‘국민’으로 지은 사람이 있었다.
 


성남은 전국 8도 주민이 모여 살게 되어 시민의 94%가 외지인이었다. 그래서 아메리카합중국에서 따온 ‘합중시(合衆市)’와 ‘하숙도시’라는 별명이 있었고, 전국에서 최초로 ‘호적 심기 고향 운동’이 1985년 성남시에서 시작되었다.
 
성남동에는 ‘모란농장’이 있었는데 서울 광나루 다리 밑에 거주하던 수재민들이 61년 6월부터 정착하기 시작하여 ‘한국의 서부’라 불려지고, 다시 ‘복지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복지촌에는 576명이 움집과 토막(土幕)에서 생활했고, 생계조차 매우 어려운 여건이었는데 카톨릭구제회(NCWC) 조지캐롤 安주교와 성모병원장 박희봉 신부와 미군 부대 등에서 여러 차례 구호물자를 제공해 주었다. 현재 중원구청 앞 마을이 복지촌이다.
 


성남동은 성남시에서 가장 먼저 주민들의 자발적인 잘 살아보기 운동이 일어난 대표적 마을이다. 그런데 지난 6월 2일에 모란지명을 이야기할 때 언급했지만 아직 모란이라는 지명이 허공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란장(5일장), 모란시장, 모란역 등의 이름이 행정지명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지역을 처음으로 개척한 ‘모란 개척단’ 활동의 의미는 성남시의 도시 발전사는 모란이 그 출발점이고, 누가 뭐라 해도 모란개척단 청년단체 원주민들 땀의 댓가는 정신적으로라도 오랫동안 기억해 둘 이야기요, 묻어질 이야기가 아니다. 모란이라는 지명과 전국 명소로 꼽혀지는 민속 모란장의 개설은 모란개척단원들의 공적이다. 모란 일대의 행정지명을 ‘모란동’으로 하자는 의견이 싹트고 있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