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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바뀌지 않았다는 죄

 

1. 조국은 유죄인가

오랫동안 내심 동지라고 믿었던 친구와 대화가 틀어진 것은 조국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정치검찰과 수구 언론에 의해 난도질당한 게 맞다. 우리 죄를 대신했으니 희생양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죄라고 말했다. 친구는 조국이 어떤 실정법을 어겼느냐며 분노했다.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진 까닭은 이삼십 대가 현 정권과 기성세대에게 분노했기 때문인데,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다. 실제로 가난하고 힘이 없는 흙수저들은 집을 살 가능성도 없고,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지 않으냐. 저 수많은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들을 보라. 그들이 과연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느끼겠는가. 우리가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재벌과 정치검찰, 수구 언론을 포함한 기득권층들이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라도 반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집권 여당 아닌가.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차원에서 조국이 유죄란 말이지, 그가 실정법을 어기고 비도덕적인 인물이란 말이 아니라고 답했지만, 친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삼십 대, 더 나아가 대중들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며, 그들이 잘못된 판단을 할 때 우리는 그들을 정론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2. 이승윤, 놀라움

나는 그가 싱어게인에서 우승한 지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헝클어진 머리와 목이 늘어진 검정 티셔츠, 통기타 하나를 들고 무대에 등장한 그가 절규하듯 허니를 부를 때, 천둥소리를 들었다. 그는 기존의 어떤 가수와도 달랐다. 날것이면서 노회했고, 신선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는 사람을 선동해서 미치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고, 그렇게 노래했다. 그에겐 곡을 쓰는 능력도 있고, 편곡하는 재주도 뛰어난데, 그가 추구하는 음악적 목표가 인간의 자유와 해방,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음악이 나오는 게 아닐까. 그의 음악적 뿌리는 찬송가와 가스펠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목사고,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그가 바라는 행복과 자유는 누구나 신 앞에 평등한 인간이란 선언에 경도된 초기 기독교인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닮은 것처럼 보인다. 이승윤이 종교음악을 하는 가수란 말은 아니다.

 

대중음악사를 둘러봐도 음악적 천재들은 대개 밴드 출신이다. 신중현과 조용필, 신해철과 서태지가 그랬고, 재즈를 대중화시킨 루이 암스트롱이나 비틀스, 마이클 잭슨, 커트 코베인 등도 모두 밴드를 통해 음악을 시작했다. 밴드는 기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든 멤버가 평등하다는 인식이 없으면, 그러니까 보컬을 담당하는 가수나 작곡을 도맡아 하는 기타리스트가 나대기 시작하면 깨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승윤이 우승하고 상금 일억 원을 받은 뒤로도 자기 밴드 알라리깡숑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가 어쩌면 재즈와 로큰롤, 우리나라 70년대의 통기타 혁명처럼 이 세상을 뒤바꾸는 음악을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길 바란다. 우리 586세대가 군사독재와 맞서 싸우긴 했지만, 세상을 평등한 곳으로 바꾸는 것은 서툴러 보인다. 하긴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청년들이었다. 재즈와 로큰롤이 이십 세기 음악을 근본적으로 뒤집어놓은 것처럼 이승윤의 노래가 앞으로 다가올 새천년의 전주곡이 되기를 바란다.

 

조국이 유죄인가 아닌가로 논쟁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군사독재를 끝장낸 게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다면, 약자도 수고한 만큼 보답을 받으며 떳떳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게 새로운 시대정신일 것이다. 시대는 사람을 쓰고 버린다. 한때 올바르게 살았다고 해서 시대가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앞에서 쓴 칼럼에서 분노한 이삼십 대가 어디로 방향을 틀지, 미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다고 적었다. 지금 이삼십 대가 만드는 미래가 우리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인도해 절벽에서 뛰어내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오세훈이 서울시장이 된 지 백일도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서울시 방역은 무너졌고, 우린 4차 유행을 보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 지고 나서야 우리가 지은 죄를 절감할까. 실정법 위반보다 더 무서운 게 역사와 시대에 지은 죄 아닐까. 이승윤의 노래를 들으며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으로 가슴이 멍이 들도록 자책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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