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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언어와 상황에 관하여

 

 

 

도쿄올림픽에서 우리 국민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는 단연 김연경이었다. 비록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여자배구 주장으로 경기를 이끈 ‘식빵 언니’ 김연경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금메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아무도 그녀의 ‘식빵’을 나무라지 않았다. 2016년 리우세계 대회 한-일전 경기 때 공격에 실패한 그녀가 돌아서며 내뱉은 ‘식빵’에는 자탄과 함께 다시 실패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다짐이 담겼고, 그 상황과 그녀의 심경에 우리가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언어는 상황과 분리되지 않는다.

 

인간의 말과 글은 내용과 함께 감정을 전달하며, 그 내용과 감정은 언제나 상황에 결부되어 있다. 한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그 언어가 발화한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반드시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거전이 달아오르면서 선거에 나온 몇 후보들이 한 후보가 했던 과거의 거친 언어를 문제 삼으며 자질에 이의를 제기했다. 언어를 다루는 것을 업으로 하는 나는 공격의 대상이 된 이재명 지사의 말과 그 말이 발화하게 된 상황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상황은 이랬다.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의 제1성은 ‘부패즉사 청렴영생’이었다. 부패하면 즉시 죽고 청렴하면 영원히 산다. 그의 전임이었던 선출직 시장 3명이 모두 부패와 비리로 감옥에 간 상황에서 성남시장을 맡은 그는 부정·비리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예고했다.

 

그런데 그의 한 형은 시의 고위공무원을 통해 절대금지를 언명한 부정청탁과 인사개입을 시도했다. 그가 들어주지 않고 만나주지 않고 전화마저 차단하자 그 형은 형수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가 시장인 동생에게 전화를 걸도록 강요하며 어머니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고 때렸으며, 집안 살림을 부쉈다. 연락을 받고 달려간 두 동생도 때렸다.

 

뒤늦게 어머니에게 달려간 그는 쓰러진 어머니와 형제들로부터 어머니가 당한 패륜을 듣고 심장이 얼어붙었다. 경악한 그는 형과 형수에게 전화해서 어머니에게 왜 그런 패륜을 저질렀는지 따지며 형이 어머니에게 한 패륜의 언어 일부를 돌려주었다.

 

나는 궁금했다. 가난과 비참과 모멸을 견디며 평생토록 자기를 길러준 어머니가 그런 패륜을 당하고 쓰러진 것을 보고도 이성적이었다면 그것이 과연 자식일까. 그의 절규와 통곡과 단말마를 나무라며 저급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인간의 품격은 과연 어떤 것일까. 대체 그 대책 없는 패륜 앞에 쓰러진 어머니를 안아 일으키며 절규했던 자식을 나무라면서 ‘품격’을 요구하는 인간의 심장에는 어떤 천년 묵은 구렁이의 언어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일까.

 

당신이 만약 그 어머니였다면, 그런 패륜을 당한 어머니의 아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머니를 때린 형의 부부에게 전화해서 ‘형님, 형수님 왜 그러셨어요? 다음부터는 살살 때리세요.’라고 아주 품위 있게 말해야 했을까?

 

절규하며 싸워준 자식이 있었기에 그의 어머니의 일생은 송두리째 부정당하지 않을 수 있었고, 다시 일어서 남은 몇 년의 생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순간, 어떤 사람에게는 부서진 야수의 심장으로 통곡하지 않고서는 지킬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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