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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23. 밤나무와 율목(栗木) 지명

 

 

율목(栗木)은 참나뭇과 밤나무속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인데, 이와 관련한 지명이 전국에 다수 분포한다. 율목은 참나무를 비롯해 ‘나도밤나무’나 ‘너도밤나무’같은 여러 종류가 있다. 나도밤나무는 이율곡과 관련된 전설이 있고, 율목은 조상의 신을 모시는 위패를 만드는 데에 사용됐다. 조선의 왕릉 대부분은 경기도 내에 자리 잡고 있어서 위패제작용 밤나무를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기도 하였다.
 
위례(慰禮) 신도시 주변에 율목 관련 지명이 많았고, 용산 효창원 주변도 율목이었고, 과천이 고구려시대에는 율목군(栗木郡)이었다. 위례와 가까운 수서의 율현(栗峴)과 성남 율동(栗洞)도 유래가 같다. 수서의 율현에서 성남 율동까지를 옛 지명 기록에는 율리(栗里)로 표기하거나, 밤나무 그늘이 진 마을이라 해서 음촌(陰村)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성남 주변으로 지금은 서울이 된 태종 헌릉(獻陵)과 순조 인릉(仁陵), 성종 선릉(宣陵)과 중종 정릉(靖陵) 그리고 위례 지역에 있던 군사훈련장인 교장대(敎場臺)와 남한산성이 있어서 임금의 행차가 잦았던 고장이다. 위례는 울타리라는 뜻인 ‘우리’가 한자 표기된 것으로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을 ‘우리’, ‘성(城)’이라 한다. 우리의 규모가 작게 사용되는 것이 집 울, 울타리, 닭우리, 돼지우리 등이다.
 


위례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창말’, ‘창곡동(倉谷洞)’이었다. 군량미와 장비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고지도에 보면 잡은 위치에 따라 율목창(栗木倉), 동본창 등의 창고 이름이 보인다. 고종 4년(1867) 9월 임금이 헌릉에 제사를 지내고 남한산성에 올라갔다. 율현(栗峴)을 지나 매착리(梅着里)에 도착하자 말에서 내려 여(轝)를 탔고, 율목창에 이르자 인부가 여를 메었다. 남한산성 남문인 진남문(鎭南門=지화문) 밖에 이르자 여에서 내려 말을 탔고, 행궁에 이르자 말에서 내려 행궁으로 들어갔다. 서울로 돌아갈 때는 반대 순서로 행차하였다.
 
조선시대 군사훈련장이 위례에서 잠실까지 펼쳐져 있었는데, 활쏘기를 하던 곳을 율목정(栗木亭)이라 했다. 숙종 14년(1688) 2월에 임금이 남한산성에 올라갈 때 광진(廣津) 북쪽 언덕에서 낮에 잠시 쉬고, 이내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 배에 내려서 앞으로 나가 율목정에서 쉬었다가 산성으로 올라갔다.

 

또 정조임금이 1779년(기해)에 효종 승하 120주년을 맞아 여주의 효종 영릉(寧陵)에 제사 지내러 갈 때도 남한산성에 오르기 전에 율목정에서 황금으로 장식된 갑옷으로 갈아 입고 말을 탔다.
 
율목참(栗木站)도 있었다. 조선의 교통제도는 역참(驛站) 또는 역원(驛院)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한양성 남문인 숭례문을 출발하여 양재역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오르기 전에 쉬어가던 곳이 율목참이다.

 

 
위례(창곡동)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주둔했었고, 해방 후에도 육군교도소인 희망대와 육군종합행정학교인 문무대, 국군체육부대인 상무대 등의 군사시설이 있었다. 육군교도소는 김재규 등 10.26 사건 관련자들이 수감됐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7월 12일부터 이듬해 1월 31일까지 204일간 구금되었던 현대사의 현장이었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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