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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진짜로 일어날 수도 있다, 기적

㉟ 기적 - 이장훈

 

모든 이야기는 ‘그놈의’ 기차 때문에 시작된다. 모든 게 기차와 기차역 때문이다.

 

경상북도 최북단, 강원도 접경 지역인 봉화군의 한 작은 마을, 전곡리 원곡 마을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변변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 사람들이 마을=세상 밖으로 나가려면 옆 마을인 분천리까지 걸어서 가야 한다. 그런데 그러려면 터널 속 외길의 기차 철로를 통과해야 한다. 터널을 걸어갈 때 기차가 오면 모두 다 죽은 목숨이 된다.

 

그래서 아이는 어릴 때부터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다. 마을에 기차역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당연히 청와대는 역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대신, 편지를 쓰던 아이 준경(박정민)이 커간다. 고등학생이 된 준경은 마을 어른들과 함께 간이역을 세운다. 양원역이란 이름도 짓는다. 그러나 양원역은 결국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 되고 만다.

 

준경의 엄마는 준경을 낳다가 죽었다. 엄마 대신 누나 보경(이수경)이 그를 키웠다.(고 그 자신은 생각한다.) 성격이 까칠한 아버지(이성민)는 기관사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무심하다. 마을에 기차역이 없다는 사실에도 무감하다. 오로지 시간을 엄수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차를 운행하는 일뿐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주의의 인물이기도 하다. 기차 운행 시간이 겹치기 때문에 그는 준경의 졸업식이든 다른 학교 행사에 한 번도 얼굴을 내놓지 못한다.

 

 

준경은 수학 천재이다. 그에게는 같은 반 여학생 라희(윤아)가 있다. 라희는 그에게 끊임없이 추근댄다. 물론 준경도 싫지 않다. 라희의 아버지는 지역 국회의원이다. 라희는 아버지를 졸라 준경과 함께 서울로 대학을 가려고 하지만 남자아이는 가족을 떠나지 않기로 한다.

 

영화 ‘기적’은 수학 천재인 한 시골 소년의 성장기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보는 사람들 스스로 경계선을 넘나들게 만든다. 아이의 얘기는 다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양원역이 전국에서 가장 작은 역이고, 지금도 백두대간협곡열차가 하루에 딱 두 번만 선다는 정도만이 사실일 것이다. 그것 하나만을 모티프로 이장훈 감독은 한 사람과 가족, 세상의 이야기를 꾸민 셈이다.

 

좋은 영화는 작은 우물에서 큰 바다로 나아가게 한다. 작은 공간의 이야기로 전체 세상의 운행 법칙을 알게 해 준다. 좋은 영화는 이른바 그렇게 ‘점층법 적인’ 영화이다. 영화를 쓰고 만든 감독 이장훈이 남다른 이야기꾼임을 보여준다.

 

 

이장훈의 영화적 자산은 꽤나 ‘현대일본영화적’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 ‘기적’은 일본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1999년작 ‘철도원’의 주인공(다카쿠라 켄)에게서는 아버지의 캐릭터를 가져왔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2011년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기차’와 ‘기적’이라는 제목을 가져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그 스타일과 분위기가 상당 부분, 잘 만들어진 일본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정적이고 정제돼 있으며 깔끔하게 세공돼 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디테일이 좋다.

 

그의 전작은 동명의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 영화의 후반부는 영국 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를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이 영화나 저 영화나, 여기나 저기나, 영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아버지는 똑같은 생각을 한다. 아비는 자식이 정말 천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다. 어쩌면 모든 기적은 그렇게 아비의 마음, 부성의 지극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 있다.

 

1987년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이 영화에는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 점이 특이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좋다. 영화는 그래서 판타지 드라마로 느껴진다.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 세상에 저런 순수한 공간과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진다.

 

 

근데 아마도 그건 감독 이장훈이 바랐던 부분이었을 공산이 크다. 철저하게 정치와는 무관한 공간과 이야기를 보여 줌으로써 오히려 그 전복(顚覆)의 의미에 다가가려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탈(脫)정치의 정치화, 혹은 현실의 판타지를 통해 현실의 각박함을 좀 더 드러나게 하는 식이다.

 

1987년의 영화 속 마을 밖은 아수라장이었을 것이다.(6·10 항쟁과 6·29 선언이 있었던 해이니까. 무엇보다 다음 해에 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때였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저 마을은 저럴 수가 있지 싶어진다. 동시에, 워낙 저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 주어지는 사회적 기능은 저렇게 순수의 원형질 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다.

 

영화 ‘기적’의 핵심은 바로 그렇게 순수의 시대로의 복원인 셈이다. 1987년에도 실패했고 2021년에도 실패하고 있는 순수의 시대로의 귀환.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잃고, 무엇을 잊고 살아가는가. 영화가 묻고 있는 대목이다.

 

영화는 중간에 엄청난 반전을 때리며 객석에서 보는 사람들을 긴박하게 만든다. 시선을 꽉 붙들어 맨다. 죽은 엄마로 인한 모성의 결핍은 주인공 준경으로 하여금 누나 보경없이는 살 수 없게 한다. 여자친구 라희는 그걸 알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이 그의 뮤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준경의 어린 삶에는 세 여자의 존재/비존재가 실존적으로 작동하고 관통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부성(父性)의 눈물겨운 사연을 이어가게 한다. 얘기가 너무 먼 산을 휘휘 도는 것 같은가. 어쩔 수가 없다. 영화 속 그 큰 ‘반전’과 스포일러를 피해가기 위해서는 이 영화의 뭔 얘기가 뭔 얘기인지 설명할 길이 없다.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저 영화를 보기를 권할 수밖에 없다.

 

이성민, 박정민, 이수경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왜 한결같이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연기 한번 기가 막히게 해낸다. 윤아의 연기는 어느 때처럼 발랄하고 귀엽다.

 

단 하나, 박정민과 윤아가 모두 고등학생으로 나오는 것은 과하다 싶은 생각도 든다. 근데 그것도 감독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인공(人工)의 모습일 수 있다. 아역과 성인 연기자로 더블 캐스팅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공산이 크다.

 

이런 부분 역시 영화를 봐야 느낄 수가 있다. 영화는 백날 얘기해 봐야 소용이 없다. 백번 떠드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최고다. ‘기적’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영화를 보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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