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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D.P. 유감

 

 

최근에 아내와 나는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을 재미있게 봤다. 아내가 ‘오징어 게임’ 다음으로 나에게 ‘D.P.’를 추천했다. 그러나 나는 벌컥 화를 냈다. “보기 싫어. 내가 왜?” 아내는 그런 나의 단호함에 당황했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D.P.’는 '탈영병 추적'을 뜻하는 ‘Deserter Pursuit’의 줄임말이다. 그럼 왜 탈영을 하게 되었을까?

 

‘어, 이건 아닌데? 난 분명히 제대했는데, 왜 또 군대에 가는 거지?’ 비몽사몽 간에 억지로 큰 한숨과 함께 꿈에서 깼다. 다행히 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아, 꿈이구나. 다행이다.’ 매번 이런 꿈을 꾸곤 한다. 휴가 마지막 날 위병소를 통해 부대로 복귀하는 꿈을 꾼다. 차마 돌아가기 싫은 곳. 군대였다.

 

내가 이런 악몽을 처음으로 꾼 것은 아니었다. 아주 어릴 때는 동네 뒷산에 있는 당집 마루 밑으로 들어가서 어두컴컴한 하수구를 비집고 들어가는 꿈을 자주 꿨다. 더는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고 몸이 하수구에 끼어서 옴짝달싹 못 할 때쯤에 꿈에서 깨곤 했다. 어른들은 키가 크려고 꾸는 꿈이라 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내가 꾸는 악몽은 항상 같은 내용이었다. 군대에 가는 꿈이었다.

 

“고 이병, 육체미 대회에 출전해라.” 중대장이 명령했다. “이병, 고형권!” 나는 큰 소리로 관등성명을 대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군대 와서 처음으로 내 입으로 못 하겠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못 하겠습니다.’ 그러자 중대장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녁 점호 후 나는 막사 뒤로 불려 나갔다. “이병 새끼가 빠져서 뭐, 못하겠습니다? 여기가 사회냐? 못하게? 까라면 까야지.”

 

나는 고참들에게 두들겨 맞고 결국 육체미대회에 출전했다. 그때 내 키 180Cm, 몸무게 58Kg.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뼈만 앙상해서 어떻게 군대에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약골이었다. 번번이 100Km 행군을 하면 낙오하기 일쑤였다. 나는 소위 말하는 고문관이었다. 대대에서 주최하는 체육대회 종목에는 축구, 족구, 줄다리기 외에 육체미라는 종목이 있었다.

 

구릿빛 피부에 우락부락한 육체미 선수들 사이로 앙상한 뼈에 기름을 칠하고 반바지만 입고서 나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 순간 대대 운동장에 폭소가 터졌다. 나는 다른 선수들과 같이 포즈를 취했다. 발가벗겨져서 태양 아래 서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죽고 싶었다. 나는 그날 밤 점호를 서면서 막사에 수류탄 두 발을 까고 M16 탄창 두 개를 자동으로 갈기고 탈영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탈영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 했다.

 

나는 85년에 입대하여 87년에 제대한 33군번이다. 30개월 꽉 채우고 특명이 지랄같이 끊겨서 보름을 더 근무했다. 나에게 군대 생활 첫 10개월은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그 후 20개월도 그다지 좋은 기억은 없다. 이유 없는 구타와 인간적 모욕 그 하나하나의 기억을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다. 나는 제대한 뒤로 그 군대에 다시 가는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다. 누구에게는 군대 생활이 추억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악몽이다. 그런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차마 보고 싶지 않다. 내가 ‘D.P.’라는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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