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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꼭꼭 눌러 담은 제천 비경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지만 코로나19로 여행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은 ‘어느 산천을 찾아가 휴식을 취할까’를 생각한다. 회색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에 질린 탓이다. 잠시라도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 위해 충북 제천의 옥순봉출렁다리를 찾는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

 

 

“당신의 이름을 옥순봉(玉筍峰)이라 칭합니다.”

 

옥순봉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는 인물은 퇴계 이황이다. ‘옥순봉(玉筍峰)’이란 이름을 붙인 이가 이황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옥순봉은 이황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옥순봉(玉筍峰)’의 작명료를 지불해야 하며, ‘퇴계’라는 조선 최고의 학자 덕에 생긴 인지도에 대한 로열티를 내야 할지 모른다. 퇴계의 옥순봉 작명과 감탄 이후 김창협, 이익, 이중환, 김정희, 김병연 등 조선의 내로라하는 학자와 문인들이 옥순봉의 절경에 흠뻑 젖어들었으며, 옥순봉을 노래한 시를 기꺼이 지어 즐겼다.

 

이황(李滉, 1501~1570)이 제천의 옥순봉과 인연을 맺은 것은 1548년(명종 3) 단양군수로 부임하면서다. 그는 성종 때 단양군수를 지낸 임제광의 글에 이어 「단양산수가유자속기(丹陽山水可遊者續記)」를 지었다.

 

 

‘유람할 만한 단양 산수에 대한 후속 기록’이라는 의미다. 퇴계는 이 글에서 단양 청풍 지역의 명승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퇴계 이전에도 김일손과 임제광이 단양의 산수에 대한 글을 남겼으나, 옥순봉을 ‘옥순봉’으로 만든 인물은 퇴계가 처음이었다.

 

1548년 5월에 공무가 있어 이웃한 청풍(淸風)에 갈 일이 생겼다. 청풍의 남한강 경치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퇴계는 단양에서 배를 타고 남한강을 따라 내려갔다. 이날은 비가 내려서 강은 구름과 안개를 토하고 삼키기를 반복하면서 그림과 같은 청풍의 언덕과 골짜기가 나타났다가는 이내 없어졌다.

 

또 강물이 급히 흘러 배가 너무 빨랐다. 그래서 ‘위대한 장관’을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다고 퇴계는 아쉬워했다. 퇴계는 화탄(花灘, 지금의 옥순대교 즈음)에 이르러 그날 밤 청풍군 관아의 응청각(凝淸閣)에서 묶었다.

 

 

화탄과 구담 등지를 천천히 음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퇴계는 이튿날 새벽 사람을 시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삼지탄(三智灘)을 지나 내매담(迺邁潭) 위에 이르러 배의 지붕을 걷어 내고 물이 불어난 화탄과 비 개인 구담의 절경을 감상했다. 그리고 드디어 옥순봉의 선경을 만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옥순봉에게 ‘옥순봉’의 이름을 선사했다.

 

화탄을 거슬러 남쪽 언덕 절벽 아래로 따라 오르면, 그 위에 여러 봉우리가 깎아질러 죽순(竹)처럼 섰는데 높이는 수 백 길이 될 만하다. 우뚝 솟아 떠받치는 기둥 같고 그 빛깔은 혹은 ‘비취색’이고 혹은 희다. 푸른 넝쿨과 오랜 고목들이 어둑한 구름 속에 서로 엉켜서 쳐다 볼 수는 있어도 더위잡고(붙잡고) 올라갈 수는 없다. 청하건대 그 이름을 ‘옥순봉(玉筍峰)’이라 하니 그 형상으로 인한 것이다.

「단양산수가유자속기(丹陽山水可遊者續記)」

 

"제천의 경승지가 단양팔경으로 둔갑한 사연"

 

옥순봉은 단양팔경 중 제6경이다. 단양을 대표하는 여덟 경승 중 하나라는 말이다. 그런데 주소지는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산 8이다. 어찌하여 제천의 명소가 단양의 경승지로 둔갑하게 되었을까. 그 사연의 중심에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이가 있다.

 

청풍은 고구려 때 ‘사열이현’이라 불렀다가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청풍으로 고쳐 제천군에 속하게 됐다. 조선 현종 2년(1660) 청풍부로 승격되었고, 1895년 충주부 청풍군이 되었다가 1896년 충청북도 청풍군이 됐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있었던 1548년(명종 3)에는 옥순봉이 단양이 아닌 청풍군 관할이었다.

 

 

옥순봉 아래 석벽에는 퇴계의 글씨라고 전해오는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지금은 물에 잠겨 볼 수 없는데, 이는 ‘단양의 관문’이라는 의미다. 청풍의 땅에 ‘단양의 입구’라고 쓰여 있는 격이다.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단양의 명승지 여덟 곳을 정해 훗날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이 8곳은 꼭 보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문제는 옥순봉이 청풍 땅에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단양의 이름난 관기였던 두향이 퇴계에게 조언했다.

 

“청풍군수에게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하도록 청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두향을 아꼈던 퇴계는 청풍군수를 찾아가 이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단양으로 돌아오던 퇴계는 옥순봉 아래에 ‘단구동문’이라고 새겼다.

 

이야기에 따라 퇴계가 청원했던 청풍군수가 토정 이지함의 형 이지번이라는 설과 당시에는 거절당했으나 이후 청풍군수가 ‘단구동문’의 글씨에 감탄하여 옥순봉을 단양에 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출렁다리에서 즐기는 청풍호와 옥순봉의 비경"

 

지금까지 옥순봉을 즐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유람선에 몸을 싣고 뱃길 따라 옥순봉의 절경을 감상하거나, 산길을 부지런히 올라 옥순봉 품에 온전히 안기는 것. 그런데 최근 옥순봉을 즐기는 방법이 하나 더 늘었다.

 

‘제천 옥순봉 출렁다리’가 주인공이다. 지난 10월 22일에 정식 개통한 ‘제천 옥순봉 출렁다리’는 개통 사흘 만에 3만여 명의 방문객을 불러 모으며 의림지 용추폭포 유리전망대, 청풍호 케이블카와 함께 제천 관광을 이끌어갈 트로이카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2015년 중부내륙광역관광개발사업 기본계획에 따라 시작된 제천 옥순봉 출렁다리 건설 사업은 기획에서 설계·시공을 거쳐 개통까지 꼬박 7년이 걸렸다.

 

주차장이 있는 매표소 앞에서 짧은 나무 덱을 지나면 출렁다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길이 222m, 무주탑 현수교 방식으로 건설됐다. 주탑을 없앤 건 아래위로 움직이는 ‘출렁다리’ 본연의 임무, 그러니까 재미와 스릴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아닌 게 아니라, 출렁다리에 올라 걸음을 옮기면 그때마다 바닥이 물결치듯 아래위로 출렁인다.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바닥 일부를 아래가 훤히 내다보이는 격자형 강철 소재(스틸 그레이팅)와 강화유리로 마감한 것도 같은 이유다. 청풍호 수면에서 출렁다리까지는 만수위일 때 12.8m, 최저 수위일 때 32.4m이다.

 

 

재미와 스릴을 담보하는 건 역시 안전. 제천 옥순봉 출렁다리는 제천의 랜드마크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안전설비를 갖췄다. 지름 40mm 특수도금 케이블을 8겹으로 꼬아 연결한 제천 옥순봉 출렁다리는 몸무게 70kg 성인 1286명, 그러니까 90t의 무게를 버틸 수 있고 초속 28.3m의 바람에도 끄떡없게 설계됐다.

 

초속 28.3m의 바람은 13단계로 이뤄진 보퍼트 풍력 계급표에서 10등급으로 분류되는 ‘노대바람(Storm)’에 해당하는 강한 바람이다. 1.5m의 다리 폭은 두 사람이 교행하기에 넉넉하다.

 

출렁다리와 연결되는 옥순봉 기슭에는 나무 덱이 설치된 예쁜 탐방로도 마련됐다. 400여m에 불과한 짧은 거리지만 옥순봉 산허리를 따라 청풍호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어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다만, 탐방로 끝에서 옥순봉 정상에 이르는 구간이 아직 미개통 상태여서 옥순봉에 오르기 위해선 6km 남짓 떨어진 계란재공원까지 이동해 산행을 해야 하는 점이 아쉽다.

 

 

제천 옥순봉 출렁다리는 초속 20m 이상의 바람이 불거나 10cm 이상의 폭설이 내리지 않는 한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입장료는 2022년 3월까지 무료(4월부터 3000원, 2000원 지역상품권 제공)다. 운영시간은 동절기(11~2월)에는 06시부터 17시, 하절기에는 09시부터 18시까지다.

 

[ 경기신문 = 심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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