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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그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이런 식이라면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우리사회의 남녀 사이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나라의 남녀간, 특히 젊은 남녀간의 사이가 현재, 너무 안 좋다. 사랑 따위는 언감생심이고 서로를 적대하고 증오하기까지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서로를 멀리하고, 만나지 않으며. 연애도 별로이고, 결혼은 거의 계획이 없어서, 출산까지는 아예 생각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이런 식이라면 국가의 미래가 없다. 국가의 생산력은 급속하게 떨어질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잘못된 정보, 잘못된 세계관에 의해 현혹되고 길들여진 20대 남자들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들은 여성가족부, 비동의 간음죄나 비동의 강간죄 등이 남성역차별을 가져온다는 소아병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20대 여성들도 군대를 갔다 와야 하거나 그에 준하는 공적 업무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걸 위해서는 지금의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후보가 문제가 많고 아내와 그녀의 가족에 온갖 비리가 점철돼 있어도 남녀 역차별만 해결된다면 그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우편향돼있고 일베화 된 지 오랜데 신문기자들 중 상당수가 2030 남자들이라는 점도 주목해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악화가 계속 악화를 구축중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 그 어떤 것보다 제1순위이고 이에 따라 여성들도 방어전을 구축하고 그에 맞서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자 간 새로운 미래를 위해 손을 잡고 함께 해 나갈 것을 기대하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실로 큰일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같은 인물이 어떤 인터넷 신문 인터뷰에서 ‘문재인 같은 대통령이 다시는 나오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그건 실로 치매성 노인의 헛소리를 넘어 다분히 20대 남자들의 그릇된 정권교체 욕망에 편승하려는 치사한 짓이다. 극단의 기회주의적 작태다.

 

20대 남자들의 대대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그건 어쩌면 역설적으로 쉽다. 여성들이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여성들이 훨씬 공부를 잘하고 지성 지수가 높으며 사회적 기능과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일찌감치 입증돼 왔던 터이다.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육체적 기능이 앞서는 등등 현대사회에서 따로 맡아서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국방의 의무도 그중 하나이다.

 

선진국형 국가에서 화이트 컬러 여성과 블루 컬러 남성의 결합이 늘어나는 이유다. 서로가 성적 역할과 그 사회적 배분을 잘 찾아 하면 된다. 남편은 데크 설치 노동자인데 아내는 변호사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남자들이 자존심 상해하거나 가부장으로서 위엄이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 잘못된 계급계층 의식, 비뚤어진 엘리트주의가 지금의 남녀 문제를 만든 셈이며 한국의 정치판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귀는 남자에게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심리치료를 받다가 아예 치유 심리학을 공부한 한 여성은 뒤늦은 미국 유학 중에 만난 13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남자는 애초부터 여자의 우월을 받아들였고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를 늘 포용하고 아끼며 산다. 이들은 각자의 일과 각자의 영역을 잘 지키며 살아간다. 현대를 살아가는 남녀간 행복의 시작은 남성들의 자각과 수용에 있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열등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국내에서 가장 강성이라는 한 공공 노조의 사무국장은 한국인 3세이다. 미국 동부에서 태어난 그녀는 현지의 유수 대학, 예컨대 NYU 같은 곳에서 석사와 박사 등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세계 노동운동의 약한 고리가 한국에 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레닌주의자이다. 그런 그녀가 한국에서 같이 살고 있는 파트너는 트럭 기사이다. 이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이 살아가고, 노동운동을 하는 데 있어 각자가 갖고 있는 학력과 지력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 기업의 임원도 영국 유수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이다. 이 여성 역시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육체 노동자와 살고 있다. 그녀가 그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느끼는 유일한 장애는 자신의 집안의 반대이지 상대 남자와의 문제가 아니다. 남자는 여자의 고학력을 불편해 하지 않는다. 잘 찾아보면 이런 사례들이 적지 않다.

 

남녀 간의 문제를 한때의, 있을 수 있는 갈등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국가의 모든 사안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단순히 경제적 혜택이나 일부 법률의 개정에서 찾으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하바드를 나왔다는 이준석 같은 인간이 그 정도의 상상력을 내세워서는 더더군다나 치졸한 짓이다. 보다 근본적이고 문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멜로영화나 멜로드라마의 프레임부터 바꿔야 하는 식이다. 전계수 감독이 만든 2018년작 영화 ‘버티고’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여성과 그 고층빌딩의 유리창 닦이 간에 벌어지는 러브 스토리이다.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어쩌면, 우리사회의 이상 조짐은 시작된 셈이다. 한국의 2030 남녀는 싸움과 적대를 멈추고 이제 사랑해야 한다. 제발 그들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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