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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정의 '오늘의 성찰'] 정신성(精神性)

 

어떠한 이치도 정신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에 귀속시킬 수는 없으며, 정신의 탄생을 물질로 설명할 수도 없다.

 

영혼의 실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 일에 열중하여 자유와 정의와 사랑 같은 정신적인 것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언제나 이성의 빛으로부터 몸을 피한다. 왜냐하면 그는 죽은 사람으로, 빛은 오직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생명을 주며, 반대로 죽은 사람이 빛을 받으면 마르고 썩기만 하기 때문이다.

 

영적 생명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다르게 변화시킨다. 영적 생명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주의를 돌려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점검하려고 애쓰며, 자신의 생활을 고결한 영적 요구에 합당하도록, 즉 자유롭고 올바르고 사랑으로 충만하도록 노력하고, 실천을 통해 자신의 생활을 선의 여러 목적에 가장 합당한 사상과 감정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사람은 진실을 찾아 빛을 향해 손을 뻗는다. 왜냐하면 영적 생활은, 눈에 보이는 외계의 생활이 태양의 빛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처럼, 이성의 빛이 없이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카)

 

형이상학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학문으로는 아닐지라도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으로서 존재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은 단순히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허영심뿐만 아니라, 이성 자신의 요구에 떠밀려 좋든 싫든 전진을 계속한 끝에, 결국 이성의 어떠한 경험적 영위도 그 영위에서 도출한 어떠한 이론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변으로까지 확대된 이성을 갖춘 모든 사람에게는 항상 무언가의 형태로 형이상학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차이는, 지극히 단순한 어린아이부터 지극히 심오한 학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명백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에 대한 천착과 논쟁은 무익하다. 그러한 것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것을 애매한 것으로 만들 뿐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 온통 죽음으로 하는 정치 속에 살고 있어. 사람을 온통 죽여놔. 정신을 뽑고 말입니다. 그래서 전쟁하려고 하는 데 정신을 빼앗겨가지고 온통 잃어버렸어. 도덕이고 뭐고 다 없습니다. 요새 자꾸하는 소리요만, 그 증거가 뭔고 하니, 요새 대학에 철학과 강좌가 지원자가 없어서 없어졌대. 이전에 우리가 젊었을 때는, 젊어서 학교 들어갈 때는 재주야 있든지 없든지 영광이라면 철학과 입학했다고 그래야 “아이고머니, 그래?” 그러고 했어. 요샌 “철학과? 바보로군” 그럴 거야 아마. “아주 철학과 없어진 데가 있을 만큼 세상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거 되겠냐” 그러면 날더러 “네가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구식이 되어서 그렇다” 그럴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말할 것은 있어. 구식이거나 신식이거나 이날까지 변할 수 없는 것은. “나긴 물질에서 났지만 정신적인 것에다 목표를 두지 않고는 사람 노릇은 못 할 것이다.” 이 대답만은 할 수 있습니다. (함석헌)/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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