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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춘무삼일청(春無三日晴)

 

 

1. 이제 곧 벚꽃

잘 쓰지 않는 한자지만, 터질 탄(綻)이란 글자가 있다. 탄로가 나다, 파탄이 나다 등으로 쓰는데, 속에 들어 있는 것이 터져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형성한 한자다. 놓을 방(放)과 합쳐서 탄방(綻放)이라 적으면, 꽃이 터질 듯이 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터지듯 피는 꽃이라면 단연 벚꽃이다. 앵화탄방(櫻花綻放)은 봄날에 터지듯 무리지어 피어난 벚꽃 군락을 가리킨다. 아직 벚꽃이 핀 것은 아니지만, 주야로 걷는 천변의 벚나무마다 꽃눈이 움트는 걸 보니 이제 곧 벚꽃 철이 올 모양이다. 벚꽃이야 예년처럼 장히 피어나겠지. 피더라도 꽃구경하러 갈 마음은 영 나지 않는다. 꽃구경이 다 무언가. 세상사 부질없다는 생각만 가득한 요즘이다.

 

2. 그는 나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 전에 미리 마음을 다져 먹긴 했지만, 막상 결과를 받아들자 가슴 한 켠이 무너져 내렸다. 지난 2012년 대선 이후 다시 또 우리가 진 것이다. 문-박 대결 당시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했다. 공들인 사업이 망해도 이렇게 좌절스러우랴 싶었고, 대학에 떨어졌다고 이렇게 슬플까 싶었다. 그때 슬픔이 하도 지겨워 미리 생각했다. 질 수도 있지. 이재명 후보 찍는 사람보다 윤석렬 후보 찍는 사람이 많으면 지는 거지. 그런다고 나라 망하겠어? 이재명과 너를 동일시하지 마.

 

하지만 그는 나고, 나는 그였다. 남 탓은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살았건만, 탓하고 싶었다. 슬프고 분했고, 상대 후보 찍은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들 가슴에 바위 하나가 얹힌 듯 답답하다 말하고, 앞으로 오 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국민 절반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는 중이다.

 

3. 봄날은 간다

명색이 의료인이지만 나는 국민 절반이 앓고 있는 아픔과 절망감을 치료할 어떤 처방도 알지 못한다. 집무실 용산 이전 결정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 앞으로 오 년 동안 얼마나 험한 꼴을 더 봐야 하나 싶어 걱정도 된다. 걱정을 미리 가불해서 할 건 없지 않나? 그가 잘하면 나라를 위해 좋고, 잘못이 쌓이면 감옥에 갈 것이다. 죄를 지으면 가게 된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힘이 없어서 감옥에 간 것은 아니잖은가. 죄가 커서 갔지.

 

시인 김수영은 이렇게 말했다.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그저 우리의 졸렬함과 수치스러움이 무엇인지 뒤돌아볼 일이다. 이재명이 부족해서 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족했다. 거기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5년 뒤라고 이긴다는 보장 없다. 봄에 사흘 맑은 날이 없듯, 앞날은 알 수 없다.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부족해서 졌다는 것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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