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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52. 하대원동의 충절과 효행으로 이름난 선비들

 
성남시 하대원동(下大院洞)은 조선 중기의 문신 송언신의 서원이 있는 곳을 ‘상대원’, 둔촌 이집의 서원이 있는 곳을 ‘하대원’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하대원동에는 충절과 효행 그리고 청백리 등의 훌륭한 인물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전해온다.
 
하대원에는 역대 임금들이 잠시 머물렀다는 대야원(大也院)이 있었다. 원(院)은 전국 각 역(驛)과 함께 여행자를 위해 관에서 설치한 일종의 숙박시설이다. 세종 13년(1431) 음력 2월 21일, 낮참에 대야원(大也院) 들판에서 머물렀다. 신하들이 좋은 음식을 올렸더니 임금이 사람과 말이 많이 죽은 것을 생각하고 잠깐 들고 곧 철거하게 하였다. 그 후에도 한 차례 더 머물렀던 기록이 있다. 대야원이 있던 곳은 현재 검단초등학교 부근으로 추정된다.
 


하대원동엔 고려 시대의 문인 둔촌 이집(遁村 李集)과 그의 아들로 청백리인 이지직(李之直)을 비롯한 후손들의 묘역이 있다. 고려 말, 신돈(辛旽)의 악행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바른 정치를 촉구하다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자 둔촌동 일자산 ‘둔굴’로 피신했다가 늙은 아버지를 업고 경북 영천의 친구 최원도의 집으로 피신하여 3년간 은둔했다. 신돈이 역모로 죽고 판전교시사에 임명됐으나 곧 사직하고 성남시 금토동과 천녕현(여주)으로 낙향하여 농사로 소일했다. 우리나라에서 기록상으로 검정콩을 최초로 재배한 사람이 둔촌 선생이다.

 

문장에 능했던 둔촌 선생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 등 당대의 석학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탄천 가에 은거한 이지직 또한 관직에 있을 때는 일을 처리함에 엄정하고 법도가 있었으며 후일 청백리에 오르고 영의정에 추증됐다. 둔촌의 묘는 경기도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됐으며, 선생의 인품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추모제와 백일장, 둔촌문화제, 중국 심양에서의 백일장 개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후손들의 묘역은 성남시 향토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관서부원수를 지낸 이윤덕 장군의 묘비에는 용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수염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아튼빌아파트 뒤편에는 충민공 이상안(李尙安) 장군의 묘와 충신정려비가 세워져 있다.

 

 

이상안 장군은 정묘호란 때 평안도 안주성에서 적과 싸우다 성이 함락될 지경이 되자 무기를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남이흥 장군과 함께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투신 순국하였다. 성현(成俔)은 ‘용재총화’에서 자신의 성(成)씨 문중을 자랑하면서도 "광주 이씨가 으뜸"이라고 평가하였다.

 


 
자이 아파트 옆의 호야경로당 마당에는 약 450년 된 회화나무가 있다. 이 회화나무는 윤탁연(尹卓然)이 1580년 치른 과거에 수석을 하여 선조임금이 하사한 나무라고 한다. 윤탁연의 묘는 하대원동에 있다가 여주로 이장했고, 후손들이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윤탁연은 동래부사·상주목사를 지내면서 선정으로 치적을 남겼고, 1582년 영남 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왕이 그의 재능을 믿고 경상도관찰사로 특채하였다. 그 뒤 한성부판윤에 승진하고 세 차례의 형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냈다. 중국 역사책에 조선 초기부터 선조임금 때 까지 태조 이성계의 혈통을 잘못 기록한 것을 바로잡은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피난갔던 왕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이 적의 포로가 되자 왕의 특명으로 함경도 도순찰사가 되어 의병을 모집하고 왜군에 대한 방어계획 등 시국 타개에 노력하다가 그곳에서 객사하였다. 윤탁연의 아들 윤경원도 임진왜란 때 전사하여 이조판서로 증직되었고, 아울러 충장(忠壯)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1983년 식목일에는 당시 김상협 국무총리가 하대원에 와서 잣나무 2천 그루를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잣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