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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사회 이면에 흐르는 것들

 

 

며칠 전 얼굴에 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는데 어떤 환자가 큰 소리로 의사를 타박하고 있었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었으나 치료결과에 대해 따지는 게 분명했다. 의사는 난감해하며 무언가 설명하려고 했고, 환자는 말을 자르며 책임을 추궁했다. 의사의 명령에 환자가 순한 양이 되어 복종하는 일반적인 풍경과는 정반대여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지내는 의사들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하면서 특수한 사례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일반적인 일이라고 대답을 했다. 의사가 갑이었던 시절은 끝났고, 갑을관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 현상이 빚어졌는지 묻지 않았다. 변화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의 뒤바뀐 관계는 분당 글쓰기 교실에서 강의했을 때 있었던 일을 떠오르게 한다. 대령 출신의 중년 남성이 수강을 했는데 그는 병사들에 대해서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이즈음 병사들은 지휘관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단다. 그러나 지휘관들이 모범을 보이거나 합리적으로 설명을 하면 병사들이 예전 못지않게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병사들을 나약하다고 본 우리들의 편견을 깨기에 충분한 증언일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들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받들어야만 했고, 어길 경우 심한 체벌을 받았던 시절에는 입대해서도 닮은꼴인 군대에 대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어디 그 뿐인가? 교도소는 물론이고 병원과 관공서 등 숱한 곳에서 개인은 억압의 피동체일 뿐이었다. 철저하게 길들여져 닫힌 사회에 걸맞는 핏기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갔던 것이다.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은 교도소 등 공적 기관이 인간을 어떻게 체제내적 인간으로 훈육하는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 보고를 통해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을 유추해 보아도 손색이 없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전근대와 근대, 현대가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것이다.

 

집권당인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 대표가 최근에 군인들의 군 기강이 빠져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도 권 대표의 말에 동의할지 모른다. 현대 사회에 맞는 군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이 생각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현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아픈 반증일 것이다.

 

1912년에 발표된 토마스만의 중편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배경인 자유로운 시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그 사회는 자본주의가 독점 단계로 이행해 인간 소외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렇다 해도 현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1백 년 전인 그 사회가 지금 우리 사회보다 뒤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가운데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전근대와 근대적 풍경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변화의 주인공들은 그 누구도 아닌 피동체였던 개인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적 진전이 관념이 아니라면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