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비싸고 희귀한 명품이 많다.
인터넷에서 명품 카메라를 치면 최상위 검색어는 한결같이 라이카다. 세계 최초로 소형카메라를 개발한 라이카의 100년 역사가 곧 사진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라이카의 명성을 뒷받침해온 것은 감각적인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능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구한 역사와 기능만으로 라이카의 명성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첨단기술을 장착한 일본산 카메라가 세계시장을 휩쓸면서 위기에 직면했던 라이카가 선택한 길은 카메라의 기본가치였다. 누가 셔터를 눌러도 비슷한 결과를 찍어주는 작동성이 아니라 찍는 사람의 조작성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카메라를 그들은 추구했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2005년 라이카는 대한민국의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라이카 대한국인 바디>라는 60대 한정판 카메라를 생산했다. 안중근 참모중장의 인장과 친필유묵 ‘대한국인’이 음각된 이 카메라에는 '60th Jubilee Independence 1945-2005 R.O.K'라고 각인되어 있다. 라이카는 장인들이 일일이 손으로 만든 이 60대의 카메라에 일련번호를 새겼고, 1번 카메라를 민주주의자 김근태에게 증정했다. 라이카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김근태에게 이 카메라를 증정한 이유는 안중근과 가장 닮은 영혼의 소유자로 인정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영혼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명품은 영혼이 있는 물건이다.
사진은 한번 지나가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포획해 영원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라이카는 왜 대한민국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카메라의 인물로 안중근을 선택했을까. 나는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카메라라는 물건의 본성에 가장 일치하는 인물이 안중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안중근이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그 순간이 바로 일제 식민지 36년을 살아낸 우리 국민의 모든 시간과 모든 독립 의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라이카는 카메라가 포착해야 하는 것이 어떤 순간인지, 지나가는 시간을 포착하여 불멸의 시간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폭동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궐기했던 광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하며 ‘광주’를 금기로 봉인했던 군사 정권에 맞서 처음 공개적으로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남영동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는 고문을 당한 다음 법정에 섰던 김근태의 시간이 오늘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라이카 대한국인 바디>는 대한민국이 독립할 수 있었던 불멸의 시간이 어디에 있었는지, 독립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불멸의 시간은 누구와 함께 했는지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소니와 니콘, 파라소닉이 절대 라이카를 대체하는 명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한파가 매서운 겨울이다. 김근태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느새 11주년이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을 쓰는 내내 떠올렸던 그의 따뜻하던 눈빛,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