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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친애하는 브루스 윌리스, 그래도 이번 영화는 별로네요.

105. 디텍티브 나이트: 가면의 밤 - 에드워드 드레이크

 

Dear Mr. 브루스 윌리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서울에 사는 사람입니다. 영화 평론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데일리 신문과 방송, 유튜브로 영화를 소개하는 영화 리뷰어입니다. 당신의 최신작, 아니 거의 마지막 작품 격이 될 것 같은 영화 ‘디텍티브 나이트: 가면의 밤’을 소개하려다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한국은 잘 아시지요? 제 기억에는 1995년엔가 서울 강남 논현동이란 곳에 플래닛 할리우드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하면서 그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실베스타 스탤론인지 아놀드 슈왈제네거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신은 거기에 갔다가 당시 용산 미8군도 들렀었지요.

 

한 방송사 기자였던 나는 그 과정을 취재했었습니다. 아주 오랜 얘기지요. 플래닛 할리우드는 당신 포함, 세 액션 배우가 만든 일종의 테마 레스토랑이었죠. 세계에 체인점을 열며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여론이 좋지 않았고 (지나치게 미국 소비문화가 들어온다는 이유로) 영업실적도 저조해 1년만에 폐점됐습니다. 다소 과한 음식점이기는 했었어요.

 

 

영화 얘기로 돌아 가면, 본인께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잘 아시겠지만, 평론 입장에서는 언제부턴가 당신 영화를 소개하는 걸 꺼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훌륭한 액션 배우이자 연기파 배우였지만 나이가 들고부터 주로 B급 액션영화에 출연해 왔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요. 작품성을 논할 수 있는 영화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영화 ‘디텍티브 나이트: 가면의 밤’은 더욱더 하향 평준화된 작품이더군요.

 

원래 제목은 ‘디텍티브나이트: 로그(rogue)’예요. 순 한국말로 하면 ‘형사 기사(騎士): 악당’이란 뜻인데 왜 번역 제목을 저렇게 애매하게 붙였는지 이해가 안가더군요. 원래대로 했으면 작품 내용과 좀 들어 맞는 부분이 있었을텐데 말이죠.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순전히, 미스터 브루스 윌리스, 당신이 아프다는 소식, 와병 소식을 들었고 그것을 늘 팔로우하고 있어서입니다. 당신이 실어증과 치매 판정을 받기 직전, 그러니까 지난 2022년 3월 이전에 만든 작품이 이 영화이니까요.

 

그래서 당신의 연기가 어땠는지 보고 싶었고, 그것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어릴 적부터 함께 해 주었던 당신, 브루스 윌리스를 위해서라면 작품이 좋든 나쁘든 그깟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생각도 했습니다. 예상대로 영화는 거의 ‘망작’에 가깝더군요. 하고 싶은 얘기는 많고, 감독의 욕심은 많았는데 일단 영화의 서사(敍事)라는 게 무엇인지, 그 기본이 안 돼 있는 작품이더군요. 왜 당신 같은 스타가 이 영화를 선택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당신의 연기는, 생각했던 대로 그리고 가슴아프게도, 실어증이 심해지기 직전의 건강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대사가 한 문장으로 돼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아서 감독인 에드워드 드레이크가 당신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필모그래피를 보니, 2020년경부터 2022년경 겨우 2년 사이에 당신과 액션영화 5편까지 찍었더라고요. ‘와우, 이건 뭐지’ 했을 정도에요. 이 작품은 아마 드레이크 감독이 3부작 시리즈로 기획을 한 것 같고요, 그래서 속편 격에 해당하는 ‘디텍티브나이트: 인디펜던스’가 미개봉작으로 남아있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제서야 무릎을 쳤죠. 이번 작품에서 당신 브루스 윌리스, 극중 배역은 제임스 나이트가 후반부 악당을 죽이기 위해 스스로 악당(rogue)이 돼 샷건을 난사하죠. 그리고는 경찰임에도 경찰들에게 체포되고 말죠. 그리고 어떻게 됐는지, 감옥에 갔는지, 어쨌는지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아 근데 2편이 있고 3편이 있다는 얘기잖아요. 2편 제목을 보니까 아마도 경찰 제복을 벗고 독립한 사설 탐정 혹은 자경단 역할을 하는 모양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3편은 보기가 힘들겠지만요.

 

미스터 블루스 윌리스. 이번 영화에서 당신은 거의 무표정 연기를 했습니다. 연기라기 보다는 그냥 뭐랄까 단순 액션을 이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종종하지 못하는 듯 보여 마음이 아프더군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영화를 본 게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이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는구나’하고 생각했죠.

 

영화 후반부 당신의 동료 형사(총 세발을 맞고 병원에 있고 사건 현장에서 만난 LA의 또 다른 형사) 상고(지미 장 루이스)가 차에서 생각에 잠긴 당신을 차창을 두드려 깨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당신은 멍한 표정으로 ‘이 인간은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지금 뭐라고 얘기를 하는 건가’하는 눈빛으로 상고를 쳐다 봅니다. 근데 그건 연기가 아닌 것 같았어요. 실제 당신의 상태가 그때 그랬던 듯 보입니다. 당신의 대사도 이거였죠. “근데 왜 나를 깨운 거야?” 그러나 당신은 차 안에서 자고 있지 않았거든요.

 

 

아마도 에드워드 드레이크 감독 이 친구가 의도적으로 이 장면을 빼지 않고 그대로 넣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더군요. 아 그리고 극중에서 총맞은 동료형사 핏체럴드 역은 로크린 먼로더군요. 수십편의 B급 액션영화에 주연급 조연으로 나왔던 잘 생긴 배우였는데 이 친구도 이제 정말 많이 늙었더군요. 세월과 시간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걸 느끼게 해줬습니다. 그렇죠. 그렇게 한 시절이 가는 거겠죠.

 

친애하는 브루스 윌리스. ‘디텍티브나이트: 가면의 밤’은 오프닝 액션 신만큼은 괜찮았어요. 범인들이 현금 수송차량을 터는 장면이었죠. 그리고 당신이 등장해 총격 신을 벌이는 장면이었고요. 그건 마치 이런 류의 영화들 중에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를 본 딴 것 같았죠. 좋았어요.

 

아 그리고 이야기 설정도 나쁘지 않았어요. 범인들이 퇴출된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라는 것, 알고 보면 형사 당신이든, 갱스터들이든, 범인들을 사주하는 진짜 악당이든 다 자기들 삶의 방식과 논리가 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마치 보스톤 작가 데니스루헤인이 쓴 숱한 하드 보일드 소설들(‘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혹은 ‘밤에 살다’, ‘무너진 세상에서’ 등)을 닮으려 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여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런 하드 보일드는 선악의 경계가 없죠. 다 자신들의 생존방식일 뿐입니다. 1920·30년대 보스톤에서는 한 집안에 경찰과 갱스터가 같이 살았을 정도였고, 1940·50년대 시카고와 뉴욕에서는 마피아 패밀리들이 일반인들과 섞여 살았으니까요. 지금은 금용자본 깡패들이 버젓이 활보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영화들은 그런 지점의 심리를 궤뚫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디텍티브나이트: 가면의 밤’은 그냥 흉내내기에 그쳤습니다. 아직 감독의 연출력, 사고, 사회 철학이 성숙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액션 신을 잘 찍는 걸 보니 액션 신만 찍는 유니트(unit) 감독 출신으로 보입니다. 촬영감독이었거나.

 

 

친애하는 미스터 브루스 윌리스. 지금껏 나의 인생에 수없이 많은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를 선사해줘서 감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식스 센스’는 걸작이었고요. ‘씬 시티’도 잊지 못할 영화죠. ‘12 몽키스’에서 당신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어요. ‘다이 하드’는 할리우드 역사에 남게 되겠죠. ‘라스트 맨 스탠딩’, ‘제5원소’, ‘스트라이킹 디스턴스’도 꼽을 영화입니다. ‘마지막 보이스카웃’에서 바람핀 아내를 용서하는 장면은 뭉클하게 했어요. 당신의 침실에서 딴 남자를 찾아 내는, 그 탐정의 감각도 대단했죠. ‘허영의 불꽃’, ‘노스바스의 추억’같은 명화는 당신의 문학적 영화로 기억될 겁니다.

 

애정하는 미스터 브루스 윌리스. 남은 생애, 기억을 조금씩 잃어 가더라도, 우리가 당신을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했었다는 사실 하나 만큼은 끝까지 기억해 주시기를. 안녕 브루스 윌리스. 부디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가족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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