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대 처리수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 계획과 관련된 뉴스가 연일 보도 되고 있다. 일본이 오염수 방류 계획을 실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의 시찰단이 방일 길에 올랐다. 그저 견학 수준이어서 들러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도 있고, 오염수를 처리하는 과정에 대해 꼼꼼히 살펴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어서 시찰단이 어떤 역할을 할지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처리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우리 언론들은 ‘오염수’로 부르고 있다. 오염수일까, 처리수일까.
‘처리수’ 명명의 효과
언어는 프레임(frame)이다.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도록 하는 영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일본에서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오염수에서 방사성 물질을 기술적으로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방사성 물질을 제거했으므로 처리수라고 사용한다. ALPS를 통해 처리가 되었으므로 이후의 오염수 농도가 낮아져 처리수로 부른다는 주장이다. ‘처리수’로 명명함으로써 과학적으로 처리되어 바다로 방류하더라도 듣는 청중에게는 안전하다고 인식되는 심리적 효과가 있다. ‘처리수’와 ‘오염수’에는 과학이 있고, 국제 정치가 작동하며, 이웃 국가 국민들의 심리가 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이름을 붙여 부른다. 명명(命名)이다. 사회문화적 변화 가운데 언어는 그 인식을 보여준다. 영어권에서 의장을 의미하는 어휘로 남성적 의미가 강한 chairman을 보다 중립적인 chairperson으로 바꿔 사용하는 것은 남녀 성평등이라는 사회문화적 인식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인종, 성별(젠더), 계층, 지역, 국제관계 등의 편견을 제거하고 보다 인간다운 언어 사용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80년대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사회 운동이 대두되었다. PC주의는 언어 표현이나 용어 사용에 있어서 편견과 차별을 배제하자는 의미에서 평등과 인권주의라고 하겠다.
정치적 올바름의 조건
과학은 객관성을 지닌다. 공개적으로 검증 가능해야 한다. 현재의 이론은 후속 연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수정된다. 사회과학에서 연구하는 기본 철학이다. 일방적으로 ‘처리수’라고 명명한다고 해서 ‘오염수’가 ‘처리수’가 되지는 않는다. 국제기구와 전문 과학자들이 중립적으로 독립적으로 공개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과로 확인 가능할 때 ‘처리수’가 될 수 있다.
방류가 현실화된다면 생선회나 수산물은 이제 못 먹게 되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불안이 고조된 가운데, 일본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설령 과학적으로 오염수가 처리수가 된다고 해서 불안감이 바로 해소되는가. 국민 심리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안전에 대한 확신이 설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과학의 장기적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