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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형의 생활여행] 기록과 기억, 여행의 순간

 

잊지 못할 여행의 순간을 떠올려보자.

끝없이 펼쳐진 화려한 꽃밭에서 원피스를 팔랑이며 뛰어가는 모습. 감성적인 숙소 풀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장면. 시원한 폭포 앞에서 함께한 이들과 잡은 포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 장면은 1인칭일까, 3인칭일까?

 

이 시대의 기억은 빠르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스마트폰에게, 사진에게, 영상에게, 그리고 sns에게. 기억은 짧지만 기록은 영원히 남고, 기억은 혼자 돌아볼 수밖에 없지만 공유한 기록은 타인의 반응을 이끌어 낸다. 기록이 기억의 대체를 넘어 세상을 장악하는 동안 사람들은 순식간에 시선을 잡아챌 수 있는 기록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되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혹은 누구와 함께였는지보다 중요한 건 여행에서 남긴 한 장의, 혹은 몇 분의 기록이다. 이왕이면 눈부시고 찬란하게, 순식간에 타인의 부러움과 감탄을 끌어낼 수 있게.

 

그러나 일부러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가슴 깊이 남아 불쑥불쑥 떠오르는 여행의 순간은 기록과 다른 방식으로 저장된다. 그 순간은 꽃밭을 걸을 때 귀 옆을 스치던 바람 한 자락일 수도, 비를 피해 들어간 처마 밑에서 맞잡은 손의 따스함일 수도 있고, 눈부시게 화려한 건축물을 본 날의 눅눅한 공기일 수도, 찬란한 야경을 마주한 시간 코끝에 닿은 매캐한 냄새일 수도 있다.

 

누구나 탄성을 내지르는 곳보다 보잘것없이 소박한 경관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보다 우중충한 날이 기억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순간이 자신과 온전히 맞닿았기 때문이다. 장면을 담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잘 나오기 위해 의식하는 자신도 내려놓은 채 온몸과 온 마음으로 머무를 때 비로소 순간을 느낄 수 있다. 타인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더라도 자신에겐 그때까지 차곡차곡 쌓은 생의 시간 어딘가와 맞닿은 그 순간은 감각을 깨어나게 하고 기억에 깊이 새겨진다.

 

여행의 순간에 오롯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내려놓기’만이 아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다른 생각과 시간이 침투하지 않게 노력하며, 시각만이 아닌 오감을 활용해 느끼려 집중해야 한다. 처음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적응했던 것처럼.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아 잊어버린 언어를 되살릴 때처럼. 지금, 여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여행의 순간을 느끼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다.

 

단 하나도 같을 수 없이 다양한 삶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게 새겨지던 여행의 순간은 비슷비슷한 방식으로 기록되면서부터 개별성을 잃고 사람의 내면이 아닌 푸른 빛을 뿜는 기계 안에서만 생명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러니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면, 기록을 남기기 전에 생각해 보자.

잊지 못할 여행의 순간. 당신은 그 순간의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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