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지난 7월 11일 몽양 여운형 선생(1886~1947) 장례식 만장(挽章)의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을 결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몽양 여운형 장례식 만장’은 근대기 중요 인물인 여운형(1886~1947)의 장례식 (최초 인민장, 1948년 이후 국민장)에 사용된 유물이다. 만장이란 망자의 덕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추모하는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깃발로 만든 것으로 여운형의 죽음에 대해 개인, 노동단체, 상인회, 종교단체, 여성단체 등 각계각층이 애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독립운동과 좌우대통합을 위해 노력한 여운형 선생의 정신 의지 사상 등을 기리고 해방공간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이번에 몽양 선생의 만장이 문화재로 등록되면 문화재로는 두 번째로, 근현대 문화재로는 첫 번째로 등록되는 만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만장 문화재는 16세기 중엽 조선시대 경남 진주 지역에서 살았던 류한(柳漢) 묘소에 부장된 9점의 만장이었다. 이번에 등록 예고된 몽양 선생의 만장은 무려 117점에 달하고 그 시기도 1947년이라는 점에서 규모와 시기 면에서 그 가치가 남다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몽양 선생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좌우합작과 남북연합을 통해 분단을 막고 자주독립을 위해 애쓰신 통합의 지도자셨다. 정파적으로 분류하면 중도좌파로 평가받는 선생이지만 해방 이후인 1945년 12월 우파 성향의 잡지 《선구(先驅)》가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인 지도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3위 김구(18%), 2위 이승만(21%)을 제치고 33%의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선생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좌우를 초월했다.
그런 선생이 1947년 7월 19일 한 테러분자의 총탄에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약 백만 명에 이르는 애도객들이 노제에 참여했고 그들의 손에 들렸던 만장들 중 보존됐던 117개의 만장이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되게 된 것이다. 문화재청의 결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더욱이 오늘의 정쟁이 어제의 정쟁을 덮어 버리며 기후위기, 저출생, 지방소멸 등 국가적 난제의 해결은 요원하게 느껴지는 시기에 자주독립과 국가와 민족의 통합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몽양 선생의 유물이 국가문화재로 등록된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얼마 전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백지화를 선언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의 종점이 들어섰을 곳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 양서면이 바로 몽양 선생의 고향이다. 양서면 신원리 묘꼴이 바로 선생의 생가터고, 지금 몽양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중앙정치의 파행과 중앙정부의 졸속 행정으로 촌민들의 삶이 난도질당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몽양 선생의 선양에 좌우 진영 없이 마음을 모았던 통합의 마음과 실천의 경험을 자산 삼아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해내는 양평군민의 저력을 봤으면 좋겠다.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될 만장 중에는 몽양 선생의 고향인 묘꼴 촌민들이 만들었던 만장도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생이 나신 묘골, 선생이 자라신 묘골 / 잊지 못할 묘골 언제 다시 돌아오시렵니까 / 영원히 살아 계실 선생의 정신을 모시고 / 우리는 길이길이 싸우겠습니다 / 양평군 양서면 묘골 마을 사람 일동. 오는 7월19일 몽양 선생의 76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좌우통합의 지도자 몽양 선생의 얼이 양평군에 전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