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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용 박사의 ‘스페인‧포르투갈 답사 여행’ ⑦ 답사일지(7월 9일)

  • 등록 2023.11.13 13:33:58
  • 14면

Casa Batlló 오전 10시 정각에 예약이다. 또한 오늘이 Barcelona 일정을 끝내야 하는 날이다. 발바닥 사정이 어떻든 마음이 공연스레 바쁘다. 날짜를 좀 더 잡을 걸 그랬나. 돌아볼 곳을 너무 많이 잡았나.

 

Casa Batlló Catalunya hop on hop off는 광장에서 로 한 정거장 거리이다. Metro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낫겠다 싶다. 24시간 요금이 좀 아깝긴 하지만 남는 시간은 몇 군데 더 돌아보면서 소비하기로 한다.

 

Casa Batlló는 처음에 Barcelona의 산업자본가 중의 하나였던 Josep Batlló가 1877년에 Gaudi의 선생이었던 Emili Salas Cortés에게 맡기어 짓기 시작했던 건물이었다. 그런데 짓다보니 바로 이웃에 지어진 Casa Amatller(당시 또 하나의 유명했던 건축가 Puig I Cadafalch에 의해 디자인 된)에 비해 너무 허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Batlló는 결국 Gaudi에게 지금까지 지어진 것을 모두 헐어버리고 다시 지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Gaudi는 이를 헐어버리지는 말고 층수(옥탑 포함 6층)를 늘리고 전체적으로 개조하는 것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해서 이 희대의 건물을 다시 짓게 된다. 그의 명성이 절정에 달했던 52세 1904년의 일이다.

 

Gaudi는 평생에 걸쳐 무척 많은 건물을 디자인하고 건축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 Casa Batlló 만큼 Caudi 철학과 취향, 재능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경우는 달리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내가 그의 작품들을 다 돌아보지도 못했고 그러한 평가를 할 만한 전문성과 식견을 갖추지도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집을 직접 둘러보고 나서 수집한 자료들만 일별하더라도 그렇게 말할 용기가 생긴다. 이 주택은 UNESCO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아닌가.

 

Casa Batlló에서는 건물(특히 주택)에 관한 나의 모든 상식이 깨진다. 마치 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했던 비상식적인(?) 예술가들, Pablo Picasso나 Salvador Dalí, Joan Miró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처음 대면했을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 같은 것이랄까.

 

 

 

 

 

이 건물의 천하 유일의 개성은 건물의 내부의 구조와 장식, 더욱이 옥상 굴뚝의 형상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Casa Milà에서도 보았듯이 Gaudi의 굴뚝에 대한 애정(?)은 대단히 유난스럽다 서구 Flat의 굴뚝들이 도시 미관의 적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기왕에 hop on hop off 티켓을 샀고 남은 시간을 이용하기 위해 국립 현대미술관으로 간다.

 

정류장에서 박물관까지의 거리가 상당한데 걷기도 고달픈 판에 뙤약볕에 목까지 타고. 마침 거리에 물장수가 있어 반가이 값을 물으니 2유로를 달란다. 두 배의 바가지다. 역심도 나고 해서 생전 처음 반으로 값을 깎는다. 그런데 조금 승강이를 하니 값이 깎인다. 그래서 두 병을 사준다.

 

왕궁으로 쓰던 곳을 미술관으로 용도를 바꾸었다니 내가 듣기에는 또 하나의 파격이다. 외관의 위용이 대단하다.

 

박물관을 오르내리는 옥외층계까지 에스컬레이터로 만들어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소장 전시물은 기대를 배반한다.

 

Catalunya를 대표하는 작가들이나 요즘 이곳의 활동가들의 경향 작품의 전시 따위를 기대했지만 전혀 아니다.

 

고인류사(古人類史) 중심의 유물들과 중세의 Fresco화 정도. 내 기대와는 맞지 않지만 그래도 입장료 내고 들어오는 탐방객들이 꽤 있다. 내가 뭘 모르는 탓일지도. 하긴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Picasso는 Picasso Museo가 따로 있고, Dali도 여기서 조금 떨어진 도시에 그의 미술관이 따로 있다고 한다.

 

Joan Miró 뮤지엄은 Montjuïc 공원 언덕에 있었는데 그냥 지나쳤었고. 스페인의 중요 작가들 작품들은 Madrid의 Thyssen이나 Reina Sofia Museo에 모두 빼앗겼을 것이다.

 

다시 Espanya 광장으로 내려가 광장 코너의 Sports Arena의 푸드코트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사먹으며 좀 쉬고 나서, 이제 Barcelona의 마지막 방문지 Picasso Museu(museo catalunya식 표기인 듯)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Metro를 이용해도 한참 걸어야 할 것 같고 해서 택시를 타기로 한다. 젊은 여성 택시기사가 무척 상냥하다 여기서부터는 골목에 차가 들어갈 수 없으니 걸어가야 한다고 하면서 아주 미안해한다. 내 발 사정을 알 리도 없는데. 고맙다.

 

Pablo Picasso(1881~1973)는 남 스페인 Andalucía의 Málaga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을 학교 미술 선생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Barcelona에서 보냈다. Picasso의 3만 여점에 달하는 작품들 중에서 Barcelona Museu에는 약 4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Picasso의 회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금부터 30년 전 영국 King’s school의 하숙집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 Pablo의 안내를 받아 Madrid를 여행했을 때였다.

 

그 때 Thyssen Museo와 Reina Sofia를 알게 되었고 Reina Sofia Picasso의 ‘Guernica’를 만나게 되었다. 그 때 경험으로 미술관의 전시기술(curation : 아직 영어사전에 공식 등재되지 않은 표현)이 얼마나 강력한 대중 교육 기능을 갖는지를 알게 된 것은 지금까지도 나의 행운이다.

 

전시된 Picasso의 dessin만을 따라가다 보니 ‘Guernica’는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다시 Picasso를 만난다는 것이 즐겁다. 이런 과정으로 관심이 만들어지고 관광이라는 산업이 만들어진다.

 

Museu는 개선문 거리 서쪽 편 골목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골목에는 여러 작가들의 전시관과 기념품점들, 거리카페와 Flamingo 클럽들이 늘어서 있다. Picasso Museu 상당히 큰 규모의 전시관이다. 65세 이상 할인 티켓을 사고(정상가 12유로를 7유로로 할인해 준다) 배낭을 맡기고 Audio Guide(그림 앞에 서서 그림에 붙어 있는 해당 번호를 누르면 해설이 나온다)와 리시버를 받아 자유롭게 감상하면 된다.

 

전시관은 초현실주의 화가들 그룹의 작품 전시실과 Picasso 전시실로 나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 쪽 입구에 Joan Miró(1893~1983, 미로는 Barcelona 태생이기도 해서 이곳 사람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작가다)가 1978년에 IBM의 Barcelona headquarter를 위해 제작했다는 ceramic tile화가 전시되어 있다. Montjuïc 엊그제 의 전시관을 그냥 지나쳤더니 결국 여기서 만난다.

 

주로 Picasso 청소년기의 dessin과 판화들 그리고 몇 몇 낯익은 유화들이 보인다.

 

 

이 리포트에서 Picasso 전시회를 해설해야 할 일은 아니니 나머지 작품 감상은 나만의 몫으로 저장하기로 한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개선문 쪽으로 한참을 와서야 배낭을 locker에 그냥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낭패다.

 

한 걸음 더 걷는 것에 살이 내리는 지경인데. 게다가 비번까지 틀려서 관리인의 도움까지 받고. 왜 이러나. 가야할 길은 멀고 아직 반도 끝내지 못했는데.

 

이 근처에 있는 개선문은 보아야 하고 개선문까지만 가면 호텔이 멀지 않다는 계산으로 다시 또 천천히 걷는다.

 

 

 

개선문을 몇 바퀴 돌면서 살펴보아도 아무런 명문이 없다. 단 한 글자의 설명도 없다. 무슨 이유일까?

 

오른 쪽의 혁명의 여신상 정도로 보이는 기념상에는 약간의 명문이 있지만 Catalunya어로 적혀있어 스마트 폰에 깔아온 스페인어 사전이나. 혹시 몰라 챙겨온 ‘민중 스페인어 사전’으로도 전혀 해독할 길이 없다. 이곳의 분리 독립운동이 강렬한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여행 가이드북에 의하면 이곳은 1888년 Barcelona 만국박람회가 열린 장소이고 현재 Parc de la Ciutadella, 즉 씨우타데야라고 부르는 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 개선문은 그 당시 만국박람회(EXPO)장의 정문으로 세워진 것이란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명문(銘文) 한 줄을 남기지 않은 이유는 뭘까? 우리 같았으면?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발길을 돌리는 참에 늘 눈에 띄었는데도 지나쳤던 작은 도시 시설 하나에 눈길이 멎는다. 아마도 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공영 자전거 거치대이다. 단정하다. 우리도 참고할만한 시설이다.

 

 

글·사진 /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 이사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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