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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소] 인천항 개항과 함께 태어나 마을 이름으로 남다…인천 미추홀구 ‘독갑다리 비석’

1883년 인천부 다소면 일대 설치…일제강점기 염전 오가던 다리
1916년 사용 중단…독각리 주민들, 마을 이름 독각다리로 불러
독갑다리 유래 4가지 추측…미추홀구 숭의로터리에 흔적 남아

 

23. 인천항 개항과 함께 태어나 마을 이름으로 남다…인천 미추홀구 ‘독갑다리 비석’

 

1883년 구한말 조선. 부산‧원산에 이어 인천항이 세 번째로 개항될 무렵 인천부 다소면 일대에 독갑다리가 세워졌다.

 

이 다리는 감리서가 있던 인천 중심가에서 내리(內里)‧외리(外里)를 거쳐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1900년대 초반까지 독갑다리 아래는 기다란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이 개천으로 동네는 장사래말‧장천리로 불리다가 1906년 여의리‧장천리‧독각리로 나눠졌다. 독각리는 독갑다리의 영향을 받아 지어졌다.

 

독갑다리 일대는 바다였는데, 일제강점기가 되자 바다에 염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독갑다리는 주민들이 염전을 오가는 다리로 사용됐다. 하지만 세워진 지 33년 만인 1916년 다리 사용이 완전히 중단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독갑다리는 사라졌어도 주민들은 서로의 입에서 입으로 다리의 존재를 전해왔다. 그 결과 주민들은 독각리를 독갑다리라고도 부르기 시작했다.

 

 

독갑다리 역사는 故신태범 박사가 쓴 ‘인천 한 세기’라는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설운동장 앞 소방서가 있는 언덕에는 화장장과 전염병 격리병원 덕생원이 있었다. 이 언덕 아래를 흐르고 있던 개천에 다리가 있었는지 이 근방을 독갑다리라고 불렀다.”

 

다리 이름이 왜 독갑인지는 현재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4가지 추측만 남아있다.

 

첫 번째는 외나무다리를 뜻하는 ‘독각(獨脚)’에서 유래했다는 추측이다.

 

두 번째는 옹기장수들이 독을 사고 팔 때 독 값을 받으러 다닌 다리이기 때문에 발음이 비슷한 독갑과 독각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다리 기둥을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큰 독에 흙을 채우는 방식으로 세워 독갑다리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또 도깨비를 뜻하는 독각귀에서 다리 이름이 나왔다는 추측도 있다. 당시 동네 주변에 도깨비산이 있었는데, 독각귀가 뛰어놀던 다리라는 소문이 돌아 독갑다리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현재 독갑다리의 흔적은 미추홀구 숭의로터리 일대에 남아있다.

 

숭의로터리에서 음식점 ‘평양옥’이 있는 골목으로 가면 만나는 지역 일대를 주민들은 여전히 독갑다리라고 부른다.

 

이곳은 인천 최초 공구상가가 형성됐던 곳으로, 아직 많은 공구점들이 남아있다.

 

지난 2001년 향토사학자들과 이곳 상인들은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독갑다리 비석과 유래비를 세웠다.

 

[ 경기신문 / 인천 = 박지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