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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홍시

 

감 참 좋아한다. 특히 홍시(紅柿). 조계사 경내에 있는 까페 ‘나무’의 홍시 쥬스, 일품이다. 지인들과 거기 앉아 한 잔 씩 하면, 소통도 참 잘 된다. 그 높은 값의 평화, 늘 홍시가 가져다준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난 주 젊은이들에게 '맹자'를 강의했다. 스물 다섯 살 복학생의 그 뜨거웠던 여름방학, 선풍기도 없는 강의실에서 공부했던 맹자원전 강독의 감동은 30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 감동, 앞으로 30년 또한 변함없이 이어지길 빈다.

 

스물 다섯 전후의 젊은이들과 함께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아버지’ 맹자(孟子)를 읽고 토론한 후, 몇 마디 보탰다. "하늘높이 달려 있는 저 홍시가 仁이다."  따지 않고, 까치의 밥으로 놓아둔 조상들의 그 인자한 가슴은 눈물겹다. 언제나 뭉클하다. 철학적이다. 이 무한 우주의 운행 안에서 그 보다 더한 어진 마음 어디서 또 접한단 말인가. 

 

 

'대지(大地)'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故 펄 벅 여사가 방한하여 경주에 갔었다. 천년 古都 여기저기를 돌아댕기다가  높이 달려 있는 홍시를 보고서는 “따기 힘들어서 그냥 둔 거냐?”고 물었다 한다. 1960년이었다. 

 

당시 수행했던 젊은 기자(故 이규태 선생)가 “겨울을 나는 새들을 위해 남겨 둔 까치밥”이라고 설명하자, 탄성을 지르며, “바로 이거야.  한국에 오길 잘했어. 그건 고적(古蹟)이나 왕릉 때문이 아니야. 이 한 가지만으로 충분 해.” 라며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 여인, 시골에서 지게에 볏단 짊어진 농부가 소달구지 곁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또 한번 감동했더란다. 무거운 짐 지고서도 달구지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특별하게 보였던 것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산문집에 보면, 그 자당님의 어진 일상이 감동적으로 씌어있다. 자모(慈母)께서는 겨울에 더운 물로 세수하신 후, 물이 식은 다음에 버리시며, 아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다 한다.“뜨거운 물 마당에 버리면, 땅 속에 사는 벌레들 눈 먼다”고. 김용택이 이 나라 대표 시인 된 이유, 다른 데서 찾을 필요 있겠는가. 

 

맹자도 왕이든 제후든 특별한 사유 없이 소나 양을 죽이지 않는 것이 인(仁)이라고 했다. 깊이 생각해보면, 仁이 의(義), 예(禮), 지(智)이기도 하지 않을까. 사단(四端.仁義禮智)은 각각이면서 크게 하나인 것 같다. 홍시가 까치에게는 仁이고, 편협한 인본주의자에게는 격조높은 義이며, 탐욕에게는 큰 禮고, 옳고 그름 구분 못하는 자에게는 오롯한 智일테니 말이다. 

 

하늘 높이 달린 채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모진 풍상을 이기는 저 홍시 한 알이 오늘 이 나라 이 겨레를 가르친다. 까치밥 얘기에 그 착한 이방인 대작가가  왜 그토록 크게 감동 받았던가. 이 땅의 씨알(民草)들은 변함없이 펄 벅의 친구들로 살고 있다. 

 

2300년 전, 맹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라고 말했다. 이 기준으로 따지면, 이 나라에서 거창한 명함 들고 댕기며 거들먹거리는 자들 대부분은 사람이 아니다.  '5大 非人間'은 세금 떼먹고 노동자들 괴롭히는 더러운 장사치들, 5류 정상배들, 영혼없는 관료들,  사랑없는 종교쟁이들, 악마떼 '기레기'들 등이다.

 

바로 그 특이종자들이 지금 저 높이 하나 남은 홍시를 향하여 쉬지 않고 돌을 던진다. 우리는 모두 여전히 절망적인 '살인(殺仁)'의 현장에 있다. 맹자는 "仁義를 저버린 포악한 군주는 방벌(放伐)해도 좋다"고 갈파했다.


방벌(放伐)은 왕을 권좌에서 끌어내려 베어죽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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