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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형의 생활여행] 세상을 등지고 싶을 때

 

생이 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작은 실수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때, 한 번의 실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 아무 잘못 없이도 오명을 뒤집어쓸 때 사람은 자신에게서 등 돌린 세상을 견디지 못해 자신이 세상을 등지려 한다.

 

합리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시대에서 친구와 가족이라는 이름은 무의미하다. 수렁에 빠진 친구를 돕다 자신까지 빠져들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이 이 시대의 미덕이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은 타인이고,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가져가려 하는 적일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은 고립된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지로 내몰린다.

 

각박한 세상이 견딜 수 없어진다면 세상을 떠나자.

 

가볍게 짐을 꾸리고 표를 끊자. 비행기든 버스든 현실에서 가장 먼 곳, 지금까지 가본 적이 없는 곳을 향해 무거운 몸을 싣자.

 

그리고 그 길에서 사람을 만나자. 홀로 훌훌 떠난 여행길에도 사람은 있다.

 

여행길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다. 새로운 곳일수록 가게와 화장실의 위치를 모르고, 종종 길을 잃는다. 가끔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주길 바라고, 소지품을 떨어뜨리고도 모르기 일쑤다. 여행이 길어지면 현지인들이 가는 음식점에도 가고 싶고, 지금 저 사람이 마시는 음료가 궁금해진다.

 

동시에 여행길에는 두려움도 따라붙는다. 누군가 가방을 훔칠까 두렵고, 신용카드나 여권을 잃어버릴까 겁난다. 바가지를 쓰는 건 아닐지,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지 않을지, 건네준 음료에 무언가 탄 건 아닐지 의심한다.

 

이 모든 순간에 사람이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또는 안 좋은 일이 겹치고 꼬일 때 여행자의 시야는 좁아진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이 세계유산이든 산해진미든 아무 의미 없다. 모든 사람은 도둑이나 사기꾼이고, 여행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장이 된다.

 

하지만 타지에서 다시는 만날 일 없는 사람의 순수한 호의를 마주했을 때 세상은 한결 달라진다.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주며 자연스레 건넨 미소와 정성껏 설명하는 길 안내가 어떤 풍경이나 음식보다도 가슴에 스며든다. 여행을 떠나기 전엔 몰랐던 지역에서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부터 대가 없는 친절을 받았을 때, 그들도 똑같은 사람임을 깨달을 때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 안으로 깊이 숨어버린 온기를 되찾을 수 있다. 자연이 사람을 스스로 나아지도록 치유한다면 사람은 사람을 직접적으로 돕는다. 한없이 좁아진 시야에도 스며들 빛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넨다.

 

여행도 삶도 마냥 아름답지 않다. 동시에 여행도 삶도 마냥 괴롭지 않다.

 

세상이 자신을 괴롭히는 듯하고 모든 사람이 싫어진다면 지금이 떠날 때다. 어느 여행길에서 세상과 자신 안의 순수한 호의가 마주 보고 미소 짓는 순간을 만나기 위해 잠시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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