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가 행장 인사를 마무리하며 경영 전략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이번 인사는 ‘영업통’으로 평가받는 현장 전문가들을 대거 발탁하며 세대교체와 조직 쇄신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는 향후 금융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 영업력을 강화해 실적 부진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 중 신한금융을 제외한 4곳이 이번 임원인사에서 행장을 교체했다. 당초 금융권 안팎에서 현 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왔던 만큼, 이번 인사는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먼저 행장 인사를 단행한 KB금융은 지난달 27일 이환주 KB라이프생명 대표를 차기 행장 후보로 선정했다. 이 후보는 국민은행 강남교보사거리·스타타워 지점장을 거쳐 영업기획부장, 개인고객그룹 전무·부행장, KB금융지주 재무총괄(CFO) 등을 역임하며 내실 있는 경영 능력을 보여왔다. 특히 푸르덴셜생명과 KB생명보험의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조직 관리 능력을 입증했다. KB금융은 “기업가치 제고를 견인할 적임자”로 이 후보를 평가했다.
이어 우리금융이 같은달 29일 정진완 중소기업그룹 부행장을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로 추천했다. 정 후보는 우리은행 종로3가지점장, 기관영업전략부장, 중소기업전략부장, 삼성동금융센터장, 테헤란로금융센터 본부장, 본점영업부 본부장을 거치며 중소기업금융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 왔다.
우리금융은 "현직 주요 경영진으로서 경영 연속성 확보, 조직 쇄신을 위한 젊은 '세대교체형 은행장' 선임에 방점을 두고 은행장 후보군 중 적임자를 찾는데 집중했다"며 "기업문화 혁신 등 조직 쇄신과 기업금융 중심 영업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지난 12일 차기 하나은행장 후보에 내정된 이호성 하나카드 사장도 현장 경험이 풍부한 그룹 내 대표적인 '영업통'이다. 하나은행에서 중앙영업그룹장, 영남영업그룹장을 역임하며 경력을 쌓은 이 후보는 하나카드 대표에 취임해 트래블로그 카드의 흥행을 이끌며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
하나금융은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금융환경 속에서 위기를 타개하고 지속성장을 이루기 위해, 고객 기반을 탄탄히 하면서 풍부한 현장 경험과 영업 노하우를 갖춘 이호성 후보를 적임자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행장 인사를 발표한 NH농협금융도 강태영 NH농협캐피탈 부사장을 차기 행장으로 추천하며 영업력에 초점을 뒀다. 강 후보는 농협은행 서울강북사업부장과 디지털전환(DT)부문 부행장 등을 거쳐 현재 농협캐피탈 지원총괄 부사장으로 재임 중이다. 다년간 여신 관련 업무를 수행했고, 인사부와 종합기획부 등의 근무경력과 일선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기획력과 영업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5대 은행 중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한 정상혁 신한은행장 역시 '영업통'으로 분류된다. 정 행장은 신한은행에서 11년간 영업점장으로 근무하면서 수상한 횟수만 28회에 달하는 등 현장에서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은행 내 전략(CSO)과 재무(CFO) 총괄을 거치면서 다방면에서 성과를 보여준 바 있다. 취임 이후 영업력 강화 전략을 통해 리딩뱅크 지위를 되찾았다는 점이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졌다.
이처럼 5대 금융이 일제히 '영업 전문가'를 발탁한 것은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있는 금융권의 경영환경과 맞닿아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당국의 대출관리 압박 등으로 수익성 둔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수익성의 기본인 영업력을 통해 실적 부진을 타개하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현장 경험을 갖춘 인물을 기용해 업무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의지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당국의 압박 등으로 대출 쪽으로도 자산 확대를 원하는대로 할 수 없는 등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영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 것이냐가 화두”라며 “올해나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은 2025년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 큰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강한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부행장 중 한 명을 승진시켰던 통상적인 관례를 깨고 비은행 계열사 출신 인물들을 '깜짝 발탁'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환주 국민은행장 후보와 이호성 하나은행장 후보, 강태영 농협은행장 후보 모두 은행에서 경력을 쌓은 후 비은행 계열사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융권에서 업권별 경계가 무색해지고 있는 만큼, 은행과 비은행 사이의 시너지 강화를 염두에 둔 선택으로 풀이된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인하기에 따른 이자이익이 예상됨에 따라 비은행 계열사 대표라는 경험이 바탕으로 새로운 핵심사업 성장 추진할 가능성도 높다"며 "영업통으로 알려진 만큼 내실있는 성장을 안정적으로 추진해 리딩뱅크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