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꾸준히 개선되던 경기지역 경제 상황이 4분기에 들어 보합세로 전환했다. 소비 회복세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및 디스플레이 생산 부진과 건설투자 감소가 경제 성장을 저해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여기에 최근 발생한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가 향후 경기 전망에 부담을 더하고 있다.
한국은행 경기본부가 23일 발간한 '경기도 지역경제보고서(2024년 12월호)'에 따르면 올해 4분기 경기지역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전분기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한은 경기본부 측은 "해당 조사는 지난달 12일부터 22일까지 진행돼 3일 있었던 계엄 사태의 여파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생산은 반도체 부문에서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와 디스플레이의 부진으로 전분기 수준에 머물렀다. 반도체의 경우 글로벌 인공지능(AI) 서버 투자가 지속되면서 고성능 D램을 중심으로 견조한 흐름을 이어갔다. 반면 자동차는 전년 실적에 따른 기저효과 및 부품사 파업에 따른 공급 차질 등의 영향으로 소폭 감소했다. 디스플레이 또한 신제품에 대한 수요가 약해지면서 생산이 소폭 줄었다. 기계·장비는 전분기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향후 제조업 생산은 자동차 신규 공장 가동으로 일부 개선이 예상되지만, 반도체는 제품 사양별로 흐름이 달라져 전체적으로는 보합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디스플레이와 기계·장비도 4분기 수준의 생산량을 유지할 전망이다.
서비스업 생산 또한 보합세를 기록했다. 화물물동량 증가로 운수업의 생산량이 전분기보다 늘었으며 도소매업도 온라인 쇼핑 매출 상승세에 힘입어 소폭 증가했다. 다만 여전히 높은 체감물가와 연말 특수 감소 등으로 숙박·음식점업 생산이 소폭 감소했고 대출 규제 강화에 따른 주택 거래량 감소로 부동산업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의 서비스업 생산은 숙박·음식점업의 회복 가능성이 있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이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운수업과 부동산업은 각각 혼재된 요인과 대출 규제 지속으로 보합세와 부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4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소폭 늘며 회복세를 이어갔다. 내구재 소비는 소폭 감소했으나 준내구재와 비내구재 소비가 소폭 증가하며 이를 상쇄했다. 외식물가 부담에 따라 숙박·음식점 소비는 소폭 감소했으나, 온라인쇼핑 및 여객· 화물 등 운수 서비스 증가로 서비스 소비도 전분기의 흐름을 이어갔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 금리 여건이 완화되고 신차 출시 효과에 힘입어 자동차 등 내구재를 중심으로 재화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서비스 소비 역시 물가 안정세, 가계 실질소득 개선에 힘입어 소폭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대두되는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라 확대된 하방리스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한은의 조언이다.
설비투자 역시 전분기보다 늘었다. 반도체의 경우 HBM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늘어난 가운데 업황이 안좋은 범용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며 기업간 격차가 벌어졌다. 디스플레이는 업황 부진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 부진이 이어졌고, 자동차는 전분기의 양호한 수준을 이어갔다.
HBM 반도체 투자 확대, 전기차 및 목적기반차량(PBV) 중심의 투자 지속으로 설비투자는 앞으로도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다만,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환율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수입 자본재 가격이 오르며 수입의존도가 높은 중소 제조기업의 설비투자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건설투자의 경우 3기 신도시 착공 지연, 높은 건설공사비·분양가로 인한 건설업체 사업성 악화 등으로 인해 감소세를 이어갔다. 수주 위축의 영향이 지속되고 내년 SOC 예산 삭감에 따른 공공부문 건설수주 감소 등이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향후 전망 역시 어두운 상황이다.
경기지역의 4분기 수출은 3분기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고성능 반도체의 호조가 지속됐음에도 업황 악화로 인한 디스플레이 수출 감소가 발목을 잡았다. 향후 수출 흐름 역시 디스플레이의 긍정적인 전망에도 불리한 자동차 수출시장과 반도체의 보합세로 인해 4분기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10~11월 경기지역의 월평균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5만 7000명 증가했으나 전분기(9만 6000명)에 비해 증가세가 둔화됐다. 소비자물가(월평균)는 전년 동기 대비 1.5% 상승해 전분기(2.1%)보다 상승폭이 축소됐다. 이는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석유류가격 상승률이 크게 둔화됐으며, 수급 여건이 개선돼 농산물가격 상승세가 축소된 영향이다.
주택매매가격은 지난 9월 대비 0.13% 상승하며 전분기(0.3%) 대비 상승폭이 줄었다. 최근 미분양주택 적체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공급과잉이 상존하고 은행 대출태도 강화, 대출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주택매수심리도 악화된 탓이다. 전세가격(월평균) 역시 같은 기간 0.25% 오르며 상승세가 둔화했다. 전세자금대출 이용제약 등으로 인해 전세매물이 늘어난 영향이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