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시사하면서 그간 예고돼 왔던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가 불가피해진 국내 산업계는 미국 현지 생산 확대 등 다각도로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높은 잠재력과 적은 지정학적 리스크로 최근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른 인도 시장 발굴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사당 연설에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며 “우리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그리고 아주 많은 다른 방식으로 아주 많이 도와주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발언했다. 다만 한국의 관세가 미국의 4배라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에 우리 정부는 "사실과 다르며, 주미한국대사관과 다양한 통상 채널을 통해 사실관계를 미국 측에 설명하고 오해를 불식시키겠다”고 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4배 관세'는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에 부과하는 평균 최혜국 대우(MFN) 관세율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MFN 관세율은 13.4%로 미국(3.3%)의 4배 수준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대부분의 상품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있어 해당 관세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미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지난해 기준 0.79%로 환급까지 고려하면 이보다 낮아진다.
이와 무관하게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주장에는 한·미 간 무역 불균형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액은 557억 달러(약 81조 원)에 달하며,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무역 적자액 규모 10위 안에 들어간다.
이번 발언이 다음 달 한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할 명분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상호관세는 상대국이 부과하는 만큼 부과하는 취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관세는 물론 정부 보조금과 부가가치세 등 비관세 장벽들도 감안해 상호관세율을 책정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트럼프발(發) 관세폭탄으로 인한 타격을 피해가기 어려운 국내 산업계도 생산 및 투자 전략을 수정해가며 분주하게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고율 관세가 부과되는 멕시코와 캐나다 지역을 피해 미국 현지에서의 생산량을 늘리거나 해당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을 중남미·호주·유럽 등으로 수출처를 바꾸는 방안 등이 검토 중이다.
LG전자는 멕시코 공장에서 만들던 냉장고 등의 물량을 미국 테네시 공장으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뉴베리카운티 가전공장의 생산물량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김창태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만일 관세 인상이 본질적인 공급망 변화를 해야 하면 생산시설 이전 및 기존 캐파(생산능력) 조절 등 적극적인 생산지 변화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에서 연간 약 26만 8000대(2024년 기준)를 생산하며 이 중 65%가량을 미국 시장에 공급하는 기아는 수출처를 중남미·호주·유럽 등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 최대 잠재시장으로 손꼽히는 인도로 눈을 돌리고 있다. 14억 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인도는 전체 인구 중 25세 미만이 40%에 달해 앞으로 소비시장이 더욱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6.5%)이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인도는 미·중 갈등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 지역에 속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무역 갈등에 대응하기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 또한 지난달 18일 '범부저 비상수출 대책' 발표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대응 방안 중 하나로 '글로벌사우스(비서구권 개발도상국) 수출시장 다변화'를 제시한 바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24일부터 나흘간(현지시간)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와 수도 뉴델리 지역을 돌며 LG전자의 연구개발(R&D)·생산·유통 밸류체인을 점검했다. LG전자는 올해 안으로 인도에서 기업공개(IPO)에 나설 계획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올해 첫 해외사업장 방문지로 인도를 선택했다. 신 회장은 최근 푸네 지역의 롯데웰푸드 제과 생산시설을 둘러봤다. 약 9년 만의 인도 방문으로, 인도를 시작으로 해외 시장 공략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지난해 10월 현대차 인도법인(HMIL)의 현지 증권시장 상장 기념식에 참석하고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만났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인도는 세계에서 내수 시장이 가장 큰 이머징 마켓"이라며 "지경학적으로도 인도 시장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