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8 (화)

  • 맑음동두천 10.8℃
  • 맑음강릉 15.8℃
  • 박무서울 10.9℃
  • 맑음대전 13.9℃
  • 맑음대구 16.9℃
  • 맑음울산 16.7℃
  • 맑음광주 13.2℃
  • 맑음부산 15.1℃
  • 맑음고창 12.7℃
  • 맑음제주 20.9℃
  • 구름많음강화 8.6℃
  • 흐림보은 12.5℃
  • 맑음금산 14.0℃
  • 맑음강진군 14.5℃
  • 구름조금경주시 19.1℃
  • 맑음거제 14.5℃
기상청 제공

[이아아의 MZ세대 찍어 먹기] 민주주의적 글쓰기: 2024헌나8 선고문을 읽으며

 

한국어 공적 문서는 오랫동안 문체적 관습을 반복했다. 과도한 한자어, 지나치게 긴 복문은 정보의 전달보다 형식의 유지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독자의 이해보다 문서의 권위를, 관계 맺기보다 절차적 안정감을 우선시하는 구조 안에서 글쓰기는 일방적인 통보의 장치로 기능했다. 그러나 글은 말하는 주체가 타자를 어떻게 대하고자 하는지를 드러내는 형식이다. 글의 구조와 문체, 어휘의 선택과 판단의 방식은 그 자체로 세계에 대한 태도이며 공공 글쓰기가 작동하는 윤리적 기반이다.

 

2024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문은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문도 법률 문서로서의 완성도는 높다. 정제된 논리, 조문과 사실의 정확한 병렬,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강조는 공적 판단의 문서가 지녀야 할 미덕을 충실히 수행한다. 다만 ‘말을 건다’기보다 ‘정리’한다. 문장은 독자를 향해 다가가기보다 정보를 가지런히 배치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관계를 열어두기보다는 서술을 마무리하고 있으며, 말이 독자에게 어떻게 닿을 것인지에 대한 고찰보다는 판단을 오류 없이 나열할 책임이 앞선다.

 

이와 달리 2024년 선고문은 문장 하나하나가 관계를 전제하여 어휘의 강도와 문장 내부의 균형이 조율되어 있다. “피청구인은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였어야 합니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법리 해석이 아니다. 정치적 태도, 헌법 질서에 대한 해석,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한 문장 안에서 겹쳐 흐르며 어느 하나도 다른 층위를 침범하지 않는다. 복잡한 판단을 한 문장 안에서 정리하면서도 독자의 사고를 통제하지 않는 이 같은 구조는, 글이 참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공공 언어의 이상에 다가선다.

 

전문 용어의 사용 역시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법률 문서에서 개념어와 조항 인용은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문장의 온도와 태도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16년 선고문은 많은 조문과 증거 사실을 나열하며 정보의 양 자체로 판단을 구성한다. 반면 2024년 선고문의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국정 마비 상태나 부정선거 의혹은 정치적·제도적·사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문장을 보면, 개념어를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논점이 문장 속에서 흩어지지 않는다. 말이 정확하되 과시하지 않고 전문성을 유지하되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선고문에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지점이 존재한다. 바로 결론을 끝으로 미루는 미괄식 구성이다. 이 방식은 정보의 흐름을 지연시키고 사유의 주도권을 글쓴이에게 남긴다. 공공의 판단이 중요한 문서일수록 글의 방향과 핵심 내용을 문장 앞부분에 제시하는 구성이 독자의 이해와 신뢰를 높인다. 두괄식은 문체의 선택이 아니라 독자가 판단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구성의 윤리다. 독자가 글 앞부분에서 논점과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면 글과 판단 모두에 대한 신뢰는 더욱 강화된다.

 

오늘날 한국어 글쓰기는 문장의 형식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반영한다는 사실, 그리고 글의 구조 자체가 하나의 태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공공 문서의 문장이 권위로 말하지 않고 책임으로 말할 때 독자는, 시민은 참여할 수 있다. 2024헌나8 선고문은 공적 글쓰기가 정제된 형식을 지니면서도 사려 깊고 정직하게 소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민주주의는 말과 글의 나눔이다. 한국어 글쓰기는 이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받아들이고 있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