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령 선포를 위헌으로 판단함에 따라, 당시 계엄령 집행에 협조한 경찰 수뇌부에 대한 법적·도의적 책임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계엄령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 등에 무장 병력이 배치됐고, 경찰 지휘부가 깊이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오는 14일 오전 10시 윤 전 대통령의 내란수괴 혐의에 대한 첫 공판을 열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헌정 질서를 무력화하고 국가 주요 기관을 통제하려 한 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경 병력을 동원해 국회를 비롯한 국가기관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 아래, 경찰은 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에 실탄을 장착한 병력을 배치했다. 당시 조지호 경찰청장은 국회 및 선관위에 대한 통제 명령을 하달한 ‘내란 주요임무 종사자’로 지목되고 있으며, 경찰관들이 K-1 기관단총과 실탄 300발을 휴대한 채 현장에 투입된 사실도 확인됐다.
현장 책임자였던 문진영 당시 과천경찰서장, 김재광 수원서부경찰서장 등도 병력 투입 결정에 관여했지만, “헌법 위반인지 몰랐다”, “명령에 따른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는 일부 군 병력의 대응과 대비된다. 선관위에 배치된 방첩사 병력은 계엄령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고, 지시 이행을 유보한 채 편의점에서 대기하는 등 명령을 우회한 정황이 확인됐다.
경찰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사태 후 배대희 충남경찰청장은 지난해 12월 6일 경찰 내부 게시판인 '현장활력소'에 "절차와 내용에 동의할 수 없는 이상한 비상계엄에 경찰이 연루돼 더럽게 기분 나쁘다"며 "수십 년간 경찰은 독재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데, 이러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일 탄핵 심판 결정문에서 윤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실체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반헌법적 행위였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당시 계엄령을 집행한 경찰 고위층 역시 위헌적 명령에 협조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 관계자는 "그동안 경찰은 독재 정권의 하수인으로 역할을 하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민주 경찰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만 잘 듣는 지휘관들에 의해 계엄 사태로 모두 허사가 됐다"며 "일선 경찰관들이 죄책감에 시달릴 동안 수뇌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경찰 조직의 회복을 위해 경찰 수뇌부는 각자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