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10·29 이태원, 12·29 제주항공 참사까지 지난 11년간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적 참사 뒤에는 늘 ‘음모론·가짜뉴스’ 등이 뒤따랐다. 한순간 가족을 잃은 유족과 생존자들은 상실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끝나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야만 했던 것이다. 경기신문은 ‘허위조작 정보 확산 먹이사슬’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재생산되는 프레임에 갇힌 당사자들을 조명하고 원인과 해결방법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진실 뒤로한 피해자 향한 ‘주홍글씨’
<계속>

지난 2014년 4월 16일, 한순간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2차 가해’ 도마에 올랐다.
당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발생 이틀 뒤인 18일과 23·25일 연달아 배보상 관련 보도자료를 냈고, 각종 언론에서는 이른바 ‘따옴표 보도’를 통해 유가족이 받게 될 배보상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 보도는 극우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먹잇감이 됐다. ‘시체 팔이’ 등 유가족에게 도 넘은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2014년 7월 14일부터 46일간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 서울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을 감행하며 이같은 프레임의 중심에 섰다.

김 씨는 경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식 10일째까지는 (주목도가) 높지 않았는데 관련 기사가 나간 뒤 방송사 인터뷰 연락이 오고 그 이후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단식농성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일베의 회원들은 ‘김 씨가 완전히 굶지 않았을 것이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자살 방조를 하고 있다’며 단식농성장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였다.
김 씨는 11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진상규명은 더디고, 피해자와 유가족을 향한 비난은 멈추지 않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제) 기사가 나가면 일베에서 ‘세월호 시체팔이’라고 (댓글을 단다)”며 “왜 그러겠나. 언론이 그때(참사 초반부터 배보상 기사를) 뿌리니 지금까지도 믿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 씨의 말과 같이 참사 당시 확산했던 ‘세월호 음모론’ 등은 올해 1월에도 한 온라인 사이트에 게시된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민변 소속 변호사로서 유가족 법률 대리인으로 활동했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확실히 정치권이 참사 피해자 대응 방법을 잘 모른다는 느낌을 늘 받았다”고 꼬집었다.
박 의원의 국회 의원실에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뜻하는 노란 리본이 가득했다. 그는 활동 당시를 떠올리며 “(참사 초반) 정부는 (배보상 자료를 통해) 국민의 인식을 다르게 공격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역시 비슷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故) 이주영 작가의 아버지 이정민 씨는 “우리나라에서 재난 참사의 피해자는 어느 순간 가해자가 돼 있다”고 했다.

생전 이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서울숲 언더스탠드 애비뉴 D24 ‘미오·니오’ 굿즈샵에서 만난 이정민 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이켜 보며 이같이 말했다.
이 씨는 “‘왜 길거리 투쟁을 하냐, 왜 정부를 공격하냐’는 식의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왜 우리(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그런 프레임을 씌우는지 너무 아팠다”고 털어놨다.
이어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 이태원 참사의 모든 책임은 희생자에게 있다는 것”이라면서 “애들이 잘못한 것이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냐는 식의 프레임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허위 조작 정보 확산 먹이사슬이 돌아가며 만들어 낸 일종의 사회적 효과”라며 “참사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누군가 작정을 하고 만들어낸 ‘디스 인포메이션(Disinformation)’ 즉 거짓 정보를 대처하지 못해 발생한 비극적 결과”라고 분석했다.
서 대표는 “(음모론·허위조작 정보는) 최초 유포자가 2차 가해나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을 받더라도 유튜브, 온라인커뮤니티, 언론 보도에 그대로 박제돼 남아 있다”며 “한 번 생산된 허위 조작 정보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되고, 이 사이클을 더디게 할 트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경기신문 = 김한별·임혜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