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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이대로 괜찮은가 中] 환경 파괴 진통…‘장수명’ 주택 구조 전환 절실

철거 후 신축 ‘비가역적 대가’ 요구
실질적인 개발 아닌 ‘기대감’ 지배
자재•인건비 급등에 ‘분담금’ 껑충
친환경 설계 등 추가에 부담 가중
주택 생애주기 관리 제도화 절실

 

한국 사회에서 재건축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30년이면 철거”라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재건축은 주거환경 개선을 넘어 도시 구조와 부동산 시장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왜 재건축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경기신문은 기획 시리즈 ‘재건축, 이대로 괜찮은가’를 통해 노후 아파트 재건축의 기준과 현실을 짚고, 그 이면에 놓인 사회적 갈등과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무분별한 철거와 신축이 반복되는 도시 재편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上) "30년이면 철거?"…진정한 정비는 재건 아닌 '개선'

(中) 환경 파괴 진통…‘장수명’ 주택 구조 전환 절실

(下) 도시 지속가능성 ‘위협’하는 한국형 도시정비

 

정부가 1기 신도시를 포함한 수도권 노후 아파트 재건축을 본격화하고 있다. 주택 공급 확대, 도시 경쟁력 회복이라는 큰 틀의 목표가 제시됐지만, 정책이 향하는 길목마다 균열음이 커지고 있다. 재건축을 향한 ‘기대감’은 집값을 끌어올리고, 실거주자는 막대한 분담금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반복되는 철거 후 신축 방식은 환경 파괴라는 비가역적 대가를 요구한다.


◇ “희망고문에 멍든 실거주자”… 분당·일산, 벌써 수억 원 뛰었다

 

 

분당 양지마을 6단지(전용 59㎡)는 최근 10억 3500만 원에 거래돼 최고가를 경신했다. 샛별마을, 시범우성 등 주요 단지들 역시 연일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4월 다섯째 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경기도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 대비 0.02% 하락하는 등 낙폭이 확대됐다. 반면 과천은 0.28%, 성남 분당구는 0.11% 오르며 상승세가 뚜렷했다. 

 

그러나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실질적인 개발 계획이 아닌 ‘기대감’이다. 분당구 내 한 공인중개사는 “재건축 시점이 최소 7~10년 이상 걸릴 것이라 보지만, 투자자들이 선점에 나서며 매물이 귀해졌다”고 말했다.

 

가격 상승의 이면에는 ‘분담금’이라는 뇌관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급등한 자재비, 인건비, 공사비를 반영하면 재건축 분담금은 평균 3억~4억 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친환경 설계, 고급 마감재, 커뮤니티 시설 등 추가 요소가 더해지면서 실거주자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같은 비용이면 더 나은 입지를 찾는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벌써 일부 단지에선 원주민 이탈 조짐이 보인다”고 경고했다.
 

◇ “30년마다 헐고 새로 짓는 도시”…선진국과 다른 한국의 ‘철거 집착’

 

한국의 재건축은 대부분 철거 후 신축이다. 이 방식은 속도는 빠르지만,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가 불가피하다. 특히 1980~90년대 대량 공급된 ‘벽식 구조’ 아파트는 리모델링이 어려워 해체 외 대안이 없다.

 

최 교수는 “지금 방식대로 다시 벽식 구조로 아파트를 짓는다면, 30년 뒤 또 철거해야 한다”며 “도시계획 철학이 부재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라멘 구조’를 제시한다. 라멘 구조는 기둥과 보를 활용한 방식으로 배관 교체가 용이하고 구조 수명이 100년 이상으로 길다. 초기 공사비가 3~6% 더 들지만, 장기적으론 유지·보수비 절감으로 총비용이 오히려 18% 이상 절감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도시가 삼키는 자원과 환경”…반복되는 폐기물과 온실가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발생하는 폐기물은 약 49만 톤, 이 중 건설 폐기물은 42.3%에 달한다. 철거 과정에서 나오는 콘크리트, 철근, 석면 등은 대부분 재활용이 어렵고 매립·소각된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 증가와 유해물질 확산으로 이어지며, 도시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위협한다.

 

독일은 오래된 주택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으며, 미국은 수백 년 된 목조 주택을 보수해 대대로 사용하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 일본 역시 리모델링 중심의 정책으로 선회하며 ‘천천히 바꾸는 도시’를 지향한다.

 

최 교수는 “뉴욕 맨해튼이나 도쿄 아자부다이도 30년 이상 걸쳐 정비된다”며 “한국은 무조건 허물고 새로 짓는 데 몰두하면서 도시의 역사와 자산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 ‘속도’ 아닌 ‘수명’ 중심의 재건축 전략 필요

 

전문가들은 단기 성과 중심의 재건축이 아닌, ‘장수명 주택’을 전제로 한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행 30년 주기로 철거·신축을 반복하는 시스템은 경제적·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장수명주택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LH는 지난해 11월 장수명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세부 이행과제를 담은 ‘장수명주택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했다.  LH는 로드맵에 따라 ‘장수명주택의 대중화’를 목표로 올해부터 오는 2032년까지 장수명주택 관련 기준을 개선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는 등 장수명주택 확대 보급을 위한 단계별 과제를 이행해 업계를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한 지자체 도시계획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공급 속도와 시장 반응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주택의 ‘생애주기 관리’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며 “라멘 구조, 모듈러 건축, 탄소 저감 설계 같은 요소들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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