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출 가산금리에 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포함하지 못하도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차주의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지만, 우대금리가 최종 대출금리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효과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취약차주들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17일 본회의를 열고 은행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해당 법안은 소관 상임위에서 180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90일간 심사를 거친 뒤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되며, 이후 60일 이내에 표결 처리가 가능하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예금보험료, 교육세 등 은행이 부담하는 법정 비용을 대출 가산금리에 포함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간 은행들이 이들 비용을 고스란히 차주에게 전가해 고금리 대출을 유지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의 입장 차이가 커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번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서 야당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금융권은 이를 두고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금리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조치가 실질적인 금리 인하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한 후 우대금리를 빼 최종적으로 정해지는데, 가산금리 조정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기준금리가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은행들은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기준 가산금리는 3.008%로 1년 전보다 0.24%포인트(p) 늘었다. 반면 우대금리(1.605%)는 같은 기간 1.03%p 줄었다. 은행들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축소하면서 대출금리가 잘 내려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산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더라도 우대금리 항목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실질 금리는 유지될 수 있다”며 “결국 수요자 입장에서 기대하는 수준의 금리 인하는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저신용자와 같은 취약 차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더 높이면서, 이들이 제1금융권에서 밀려나 2금융권 또는 비제도권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출 심사를 강화하게 되면, 소득이 불안정하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은 사실상 대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금리를 낮추겠다며 시작한 법 개정이 오히려 금융소외를 키우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