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계엄 사태 당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직속 부하에게 정치인 등 주요 인사 14명 명단을 불러주면서 이들을 잡아 B-1 벙커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27일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준장)은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당일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이 같은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 전 수사단장은 "여 전 사령관이 '장관님으로부터 명단을 받았다, 받아적으라'며 한 명 한 명 불러줬다"며 "그 인원들을 잡아 구금시설, 그니까 수도방위사령부 B-1 벙커로 이송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여 전 사령관이 불러준 명단은 우원식(국회의장)·이재명(당시 민주당 대표)·한동훈(당시 국민의힘 대표)·조국(당시 조국혁신당 대표)·박찬대(민주당 원내대표)·정청래(국회 법사위원장)·이학영(국회 부의장)·김민석(민주당 수석최고위원)·조해주(전 선관위 상임위원)·양경수(민주노총 위원장)·김어준(방송인)·김민웅(촛불행동 대표)·김명수(전 대법원장)·양정철(전 민주연구원장) 등 14명이다.
김 전 수사단장은 "이들에 대한 혐의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혐의는 모른다'고 했다"며 "혐의점은 나중에 구체적으로 내려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명단 자체가 정치인들이다 보니 처음 불러줬을 때부터 이상한 느낌은 있었다"고 말했다.
여 전 사령관이 '체포'라는 단어를 쓴 적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선 "계엄 선포시 합수단의 임무는 계엄 사범을 체포하는 것"이라며 "사령관은 '잡아서 이송시키라'고 했고, '체포해서 이송시키라'는 의미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여 전 사령관이 계엄 해제 이후 '체포 명단'의 존재 자체를 은폐하려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김 전 수사단장은 '여 전 사령관이 명단은 아예 없었던 것으로 하라고 지시했느냐'는 군검찰 측 질문에 "그렇다"며 "그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여 전 사령관이 내게 명단이 있냐고 물었고, 없앨 수 없냐고 했다"며 "출동 당시 수사관들에게 명단을 줬기 때문에 다 알고 있다, 숨길 수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군검찰 측이 "여 전 사령관이 명단을 파기하자고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김 전 수사단장은 "사령부 전체가 수사받고, 온갖 안 좋은 일에 휘말리는 것에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또 여 전 사령관이 계엄 당시 말을 아끼며 막연하게 지시를 내렸다며 "구체적으로 지시할수록 잘못에 엮여버릴 수 있으니 핵심적인 지시만 했을 것이다. 조사를 받다 보니 여 전 사령관은 (계엄선포를) 미리 알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