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한반도 남쪽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으로 혼란에 빠진 사이 북쪽에서는 어린 청춘을 러·우 전쟁판 최전선으로 몰았다. 수천명의 사상자를 남기고 전쟁이 끝나는 시간에 대한민국에서는 21대 대통령이 탄생했다. 취임사에서 대통령은 부당하게 약자가 억압받지 않도록, 도전이 가능한 나라를 약속했다.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특권이 사라진 공정 사회를 만든다고 했다.
지금 나에게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을 인식할 시간도 없이 살아가는데 바쁘다. 거기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선거가 시작되면 마음은 혼란스럽다. 너는 어느 편이냐? 보수냐 진보냐. 어느 편 모두 치유하지 못한 분노가 쏟아져 나온다. 아직 내 안에 상처가 많아 나도 그들의 분노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고향과 가족 생각을 하면 갑자기 우울해지고 거칠어진다. 터지는 분노와 상처를 치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없기에 과거가 현재를 죽이고 현재가 미래의 행복을 소멸시킨다.
탈북이라는 허약한 씨앗에게 도움은 필요하다. 소속이 필요하고 공동체가 필요하다. 어느 쪽에 들어가면 그곳은 안전한가. 물론 광야에 홀로 떨어진 것보다 낫겠다. 고향을 떠나고, 대한민국을 찾은 이유는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위해서이다. 아름다운 환대와 북한이탈주민 정작지원이 있음에도 문학은 왜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지 못하는가. 탈북문학은 분단사회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기회는 공평하고 자원은 평등했는가.
보이지 않은 끈처럼 나와 너를 연결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문학에서 나온다. 다른 너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시를 쓴다. 살아있는 동안 내가 사는 세상을 모르면 마음속 분열이 일어나기에 살기 위해,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은 나를 가장 안전하고 슬프지 않는 길로 안내한다고 믿는다. 어제와 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 힘은 글에서 나온다. 글은 과거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과거에 뿌리를 내리고 긍정적 미래로 향하게 한다. 죽으려는 생각보다는 죽음에서 나를 살리는 힘이 글이다.
문화강국을 선포한 21대 대통령님께서는 탈북문학이 문화가 되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란다. 취임사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자가 산자를 살리기 위해 탈북문학이 중요하다. 갈등과 분열에서 소통과 화합을 이루기 위해 지금은 탈북문학을 꽃 피울 시간이다. 나를 나답게, 너를 너답게 이해하는 소통의 문화가 탈북문학으로부터 시작되도록 정책을 만들고 실행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북한이탈주민 정책을 점검하여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자원이 배분되도록 해야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기회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 만큼이나 어렵다. 연구 공모에 17번이나 응모하여 단 한번의 기회도 얻지 못했음에도 글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과 단번에 기회를 얻은 사람의 차이는 크다. 지금은 쉽게 얻기보다 값지게 얻는 성과를 함께 나누고, 문학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한 시간이다. 공정한 기회로 글쓰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없으며 글쓰기로 소통하고, 약자를 배려하고 성장하는 대한민국의 경의로운 역사에 탈북문학이 동참할 수 있도록 21대 대통령께서 정책으로 정착을 지원해 주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