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를 쓰기 시작하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울컥하고 꺼낸 글이 시가 되었다. 논문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시(時)라니? 나는 내가 시를 쓰리라 상상을 못 했다. 돈 안되는 시를 왜 쓰냐고 물으면 딱히 그럴듯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한 건 시를 썼으므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힘든 시간을 견디게 했던 시가 이제는 나에게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동안 두 권의 시집을 냈고, 문학상도 받았다. 처음 시를 쓸 때 감정을 표현하는데 급했다면 지금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과 세상을 보려고 한다. 시와 정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시와 정치는 관계가 있다. 나는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겪으며 부패하고 멍청한 사람과, 영리하게 이익을 취하면서 나라를 위한다는 정치인을 보았다. 권력이 부패하면 시가 깨끗해진다는 글이 생각난다. 나는 가끔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시적 매력보다 시대에 맞서는 용기가 부러웠다. 그러한 용기가 없기에 나의 시는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하기에 나의 마음은 그렇게 너그럽지 못한듯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진실을 찬미하고 거짓을
나는 2006년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그동안 네 번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나는 빠지지 않고 참가해 권리를 행사했다. 누구를 찍어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소란을 떠는 바람에 두 번은 흔들렸고, 두 번은 소신껏 투표했다. 네명의 대통령 중 한명의 대통령은 법정에 섰고, 두명의 대통령이 탄핵 되었다. 나는 정치에는 관심 없으면서, 정치학을 공부하던 2017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경험하기 위해 탄핵 찬반 집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2025년 ‘비상계엄령’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를 관망했다. 나는 두 번에 대통령 탄핵을 경험하면서 리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 두 개의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면서 고민했던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비영리단체 리더를 자처하고 있으며, 어째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올바른 리더는 없을까.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비영리단체 활동에 적극적인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지만, 최고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가진 듯한 대통령의 명예롭지 못한 결말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의 탄핵으로 리더란 무엇이며 리더는 어떤 사람이여야 하는가. 어째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았다.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으로 시작된 혼란은 2025년4월4일 헌법재판소 탄핵 선고 인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정치가 탈북민 사회에 남긴 문제를 생각해 볼 시간이다. 하나의 사건을 동시에 경험했어도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차이는 다르다.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는 언어와 선동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보기 어려웠다. 탄핵정국에서 바라본 탈북민 사회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열의 축소판 같았다. 대통령을 지킨다고 태극기를 들고 매일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탈북민으로 갈라졌다. 각자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국회 연단에 서기도 했다. 자신의 소신을 탈북민 커뮤니티에 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 침묵했다. 침묵의 의미는 탄핵 찬반에서 중립이거나 파면에 동의한다. 파면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주장과 맞붙어 정신력을 소모할만큼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 있다 하더라도 탄핵에 찬성하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침묵한다. 탄핵 반대는 국민의 힘, 즉 보수를 지지하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주장에 힘을 싣는 이유는, 보수 정당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라고 우크라이나를 압박한다. 우크라이나는 아쉬워도 끝낼 수 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가 열세에 있는 사이 러시아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 필사적이다. 막판 최전방에 북한군을 세웠다. 수천명이 죽었다는 믿기지 않는 통계가 나왔다. 전우의 시체를 넘으며 싸우는 기술은 날로 늘어 전투력이 높아졌다는 소식이다. 국가는 병사를 전장에 내몰면서 참전 사실마저 부인한다. 그러나 한국어를 사용하는 포로를 감출 수 없다. 처음 붕대를 감은 북한 군인을 뉴스로 보았을 때 가짜라 생각했다. 북한군인 참전은 사실로 나타났다. 휴전 협상에서 포로는 가장 큰 이슈가 된다. 이슈가 되는 북한군 포로를 놓고 벌써부터 신경전이다. 국가가 참전을 부인하니, 병사에게 국가는 없다. 그렇다고 러시아 군인도 아니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병사는 한국을 희망한다. 이들을 국내로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병사는 한국으로 올 수 있을까. 참전을 부인하는 국가는 포로를 송환할 생각은 있는가. 존재조차 인정되지 않는 병사에게 어떤 선택이 있을까. 그들은 귀향할 수 있을까. 병사의
‘하늘’이라는 글자 아래 북한군이 있다. 올가미가 걸려있고 군복을 입은 사람이 보인다. 병사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다. 러·우 전장에서 북한군은 잡힐 위험이 있으면 항복을 거부한다.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병사만큼 두려운 전투는 없다. 한국전쟁 막바지 고지전에서 불 뿜는 화구를 몸으로 막았다는 병사가 있다. 국가는 그것을 교본으로 죽기 살기로 싸우라고 부추긴다. 전장에서 잡히지 말고 죽으라 한다. 이미 죽어있는 사람 얼굴을 노출하고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모습도 잔인하지만, 죽음을 부추기는 국가는 하늘이 부끄럽게 잔인하다. 누구의 아들이었을 청춘의 병사는 훗날 무엇으로 기억될까. 하늘이 열린 이후 무수한 전쟁이 있었다. 병사는 전장으로 내몰리고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 그래서 그렇게 싸워 무엇을 얻는가. 병사가 싸워 얻는건 파괴다. 파괴를 부추긴 수령은 죽지 않는다. 어떻게 더 많은 이익을 얻을까에 관심 있다. 중동에 있는 가자지구를 보라.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건물이 파괴되었는지. 그리고 아무런 일이 없은듯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그곳에서 쫒아내려 한다. 강제 이주시키려 한다. 여기서 사람은 숫자에 불과하다. 별이 폭발하면 또 다른 별이 탄생하겠지만
북한군 러시아 참전이 사실일까?. 12일 KBS에서 북한군 2명을 러시아 쿠르스크지역에서 생포했다고 보도했다. 붕대를 감은 얼굴이 공개되었다. 외모가 비슷하지 않아 보인다. 설마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작년 10월 북한군이 쿠르스크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었을 때에 설마 했다. 그런데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더니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한 달 안되는 사이 ‘북한군 한 개 대대 사망, 총 38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죽음이 통계로 기록되는 전쟁판에 북한 군인이 있었다. 북한군은 어째서 러시아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최전방에서 총알받이가 되어 지뢰를 해체하며 전우의 죽음을 뒤로하고 떠밀려 나가야 하는지. 병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겠다 약속이라도 했는가. 무자비한 드론이 병사를 공격하는 영상을 보는 것으로 충격인데, 그 당사자가 내가 떠나온 내 고향 사람들이라는게 보기가 무척 힘들다.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병사가, 어느날 명령으로 지형에도 익숙하지 않는 전장으로 왔을 것이다. 만약 참전 사실을 알았다면 ‘난 못가겠소’ 거부라도 해보고 죽어도 덜 억울하지 않겠다. 막판 전쟁이 얼마나 처절한지 병사의 조국에서 모를리 없다. 전
2024년은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해이다. 국가는 지금 12.3 비상계엄으로 혼란하다.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총리가 탄핵 되었다. 그리고 지금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을 넘겨받았다. 국가 비상상황에 권한대행이 있어 다행이다 싶으나, 전반적으로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기는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난무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보기 어렵다. 그 와중에 29일 제주항공 참사가 있었다. 행복여정문학 송년회를 마친 다음날 소식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을까. 두 명을 제외한 비행기 탑승 전원이 사망했으니, 2024년은 개인이나 국가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해이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이루어놓은 성취도 있다. 두 번째 시집 ‘오늘도 마음에 꽃을 심는다’를 출간했다. 남북통합문화센터 창작지원 공모 선정작으로 그동안 틈틈이 써놓은 글을 모았다. 글을 쓰는 기쁨도 크지만 책으로 출간했다는 뿌듯함도 있다. 나에게 글쓰기는 나를 확인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세상을 보는 창이 생겼다고나 할까. 나는
대통령은 얼마나 높은 자리인가? 대통령의 자리는 높다. 민주적인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은 검증된 리더이다. 모든 사람의 존중을 받으며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남북한 문제는 물론 국내외 문제도 잘 풀어, 멋진 대한민국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대통령 권한은 국가 안녕에 쓰라고 있다. 국민 안녕이 깨어진 것은 지난 3일부터이다. 대통령은 12월 3일 10시 23분 비상계엄을 선포, 4일 새벽 2시 27분 계엄을 해제했다. 영화 ‘서울의 봄’이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들, 국회로 난입한 계엄군, 담을 넘는 국회의원, 나는 지금 상황이 잘 정리되기를 바라며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처음 경험하는 나만 놀란게 아니었다. 모두 실시간 상황을 지켜보며 상황을 공유했다. ‘비상계엄령’이란 무엇인가? 긴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내리는 명령이다. 언론이 통제되고, 계엄이 해제되기까지 행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한인 ‘비상계엄령’은 때로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다. 국민은 여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신속하게 국회로 모였다. 그리고 표결에 참여할 국회의원이 담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왔다. 국민은 ‘비상계엄령’ 시기
디아스포라는 추방과 이산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diaspeirein에서 유래되었고, ‘~를 넘어, ~를 지나다’라는 뜻과 ‘흩뿌리다’의 합성어이다.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기’에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바빌로니아(이라크)에서 가나안(이스라엘)으로 갔다. 이스라엘에 기근이 생기자 이집트로 피했고, 그곳에서 형제 요셉이 그들을 맞았다. 아브라함과 요셉이 죽은 뒤 유대인들은 노예 상태가 되었고, 이들을 구출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는 무리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갔다. 모세의 후손들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북쪽과 남쪽으로 쪼개졌고, 신의 분노로 성전은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세계로 흩어졌다. 디아스포라는 이산과 이주를 설명하려는 연구자들이 만든 용어 즉 연구 분석틀이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추방과 이산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고, 의미는 확장되었다. 5세기 강한 국가 사이에 끼인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전쟁과 침략으로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고, 16세기 노예무역으로 11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갔다. 18세기 영국식민지 상태였던 아일랜드는 대기근으로 백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경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등장으로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잃을 위기에 있고, 러시아는 전쟁을 끝낼 기회를 얻는다고 한다. 어째서, 누가, 그곳에서 무엇 때문에 싸워야 하는지 묻기도 전에 두 나라 싸움은 곧 끝날 것 같다. 끝나기 전 뺏기지 않으려, 더 많이 빼앗으려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 경계와 경계를 넘어 밀고 당기고 마치 한국전쟁을 기억하게 한다. 두 나라 싸움에 미국 대통령은 무엇이기에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장담하며, 북한 지도자는 무엇이기에 막판 싸움에 앳된 병사를 총알받이로 보내는 것일까. 죽은 사람은 답이 없고 산 사람은 증오와 복수만 가득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으니, 우주인 시선이라면 티끌같이 작은 지구에서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인간의 어리석움에 조소를 보낼 것이다. 전쟁은 악이다. 총포탄이 오가야만 전쟁인가. 아직도 한반도는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가득하다. 어느 무식한 지도자가 게임이나 하듯 전쟁 버튼을 눌러버릴지 알 수 없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받지 않은 국가는 언제든 총과 대포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증오에 증오를 부르는 전장에서 목숨은 지극히 가볍다. 어디든 도피해 영달을 꾀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