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으로 시작된 혼란은 2025년4월4일 헌법재판소 탄핵 선고 인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정치가 탈북민 사회에 남긴 문제를 생각해 볼 시간이다. 하나의 사건을 동시에 경험했어도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차이는 다르다.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는 언어와 선동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보기 어려웠다. 탄핵정국에서 바라본 탈북민 사회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열의 축소판 같았다. 대통령을 지킨다고 태극기를 들고 매일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탈북민으로 갈라졌다. 각자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국회 연단에 서기도 했다.
자신의 소신을 탈북민 커뮤니티에 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 침묵했다. 침묵의 의미는 탄핵 찬반에서 중립이거나 파면에 동의한다. 파면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주장과 맞붙어 정신력을 소모할만큼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 있다 하더라도 탄핵에 찬성하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침묵한다. 탄핵 반대는 국민의 힘, 즉 보수를 지지하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주장에 힘을 싣는 이유는, 보수 정당인 국민의 힘에서 탈북민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주었고, 진보정당인 민주당은 탈북민에 관심이 없기에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이 외에도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탈북민은 당연히 보수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통하지 못하는 국회처럼 탈북민 사회도 날카로운 언어로 상처받고 상처를 주고 있다.
탈북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 ‘빨갱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있는 단어를 사용해 갈등을 불러온다. 탈북민 존재 의미가 마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증명하는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반도는 이념으로 분단되었고 아직 치유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고향을 떠난 탈북민 역시 전쟁에 비교될 만큼 이산의 아픔과 상처가 있다. 고향이라고 하지만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 다시 태어나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자 한다. 그러나 분단사회에서 과거를 잊고 현재를 살기란 어렵다. 대통령의 탄핵과 같은 혼란이 있을 때마다 소용돌이 정치에 탈북민이 있었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탈북민의 주장처럼 정말로 민주당은 탈북민을 소홀히 하는가. 그리고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한 국민의 힘은 정말로 탈북민에 관심이 많은가.
지금이야말로 탈북문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문학은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보게 한다. 문학은 나의 존재와 가치를 알게 한다.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이 글을 쓴다. 북에서나 남에서나 결핍이 없었던 사람, 경험과 능력도 없으면서 리더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어찌 슬픔을 알겠는가. 문학은 글로써 나를 증명하고 스스로 사회의 필요성을 만들어간다. 그것은 불러서 꽃이 되기보다 존재 자체만으로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탈북민 사회에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탈북문학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저조하다. 불과 몇 명을 선정하는 탈북민 문학공모가 정직한 심사를 거쳐 훌륭한 문인을 배출하기를 기대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으로 혼란한 정치판에 분열과 갈등보다 지적인 대화로 소통할 수 있는 탈북문학이 필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