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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뉴스읽기] AI시대의 물성매력

 

아이들은 무엇이든 만지고 입에 넣으려고 하는 때가 있다. 우리 집 손녀도 서류 묶는 클립을 슬그머니 잡더니 입에 넣으려 하여 아이 아빠가 깜짝 놀라 소리를 친 적이 있었다. 여행 갔던 곳에서 마그네틱 기념품을 사와 냉장고 문에 붙여 놓으면 그것을 볼 때마다 그 여행지 추억이 떠오른다. 구강기 아이 뿐 아니라 이렇듯 감각으로 만지고 체험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일 것이다.

 

김난도 교수가 우리 사회, 경제, 문화 분야의 한 해 전망을 담아 매년 펴내고 있는 책의 올해 판 '트렌드 코리아 2025'는 10가지 소비자 트렌드 중 하나로 물성매력(Experiencing the Physical: the Appeal of Materiality)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물성(materiality)’이란 말 그대로 손에 잡히는 사물의 성질을 의미한다. 그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서도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을 통해 체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손에 잡히는 것과 같은 매력을 지니게 만드는 힘을 김난도 교수는 ‘물성매력’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디지털과 AI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사람들은 ‘물성’을 갈망하며 아날로그적 감성에 다가가려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사무실에는 쌓아두는 서류나 사물함이 사라진 요즘이지만, 이런 때 사람들은 무언가 체감할 수 있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물성매력은 단순히 옛날 감성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어쩌면 디지털에서 결핍된 감각을 채우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젊은 세대가 LP판을 사거나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손 글씨를 쓰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오히려 물성매력에 더 끌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레트로 카페를 찾고, 빈티지 샵 쇼핑을 즐기며, 자기만의 다이어리를 꾸미는 등 감성 소비를 주도한다.

 

많은 기업들이 AI를 중심으로 한 기술 개발에 승부를 걸고 있다. 그런데 상품이 뛰어난 기술력을 지녔다는 것과 소비자들이 그 기술을 체감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기술을 제품으로 구현하여 이를 소비자들에게 경험하게 하려는 물성화 노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제품 체험관이 곳곳에 생겨나고 아예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상시 운영하는 기업들도 있다.

 

AI시대에 물성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기술 변화의 속도가 현격히 빨라지면서 소비자들은 제대로 새 상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그 효용성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다. 불과 2~3년 전만해도 IT 분야의 주요 키워드는 메타버스였다. 하지만 이제 메타버스는 AI에 밀려 관심이 줄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AI시대로 진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AI를 겨우 시험해 보기 시작했는데, 범용인공지능(AGI)이 곧 도래한다거나 AGI를 거치지 않고 바로 초인공지능(ASI)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는 예측을 하기도 한다. 만져지지 않는 AI 기술이기에 그 효용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체감, 물성화가 중요한 것이다.

 

만지고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인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AI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체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손에 잡히는 나무의 결, 종이의 질감, 삐걱거리는 소리, 시골 아궁이 연기 냄새. 이 모든 것이 디지털이 줄 수 없는 우리 생각과 감각의 공백을 메우는 원천이 되기를. AI시대의 물성매력으로 우리 삶이 더 풍성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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