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배추 가격 보면 장보는 손이 떨립니다.”
경기 수원시의 한 마트에서 만난 50대 주부 박모씨는 배춧값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2000원대였던 배추 한 포기 가격이 이제는 5000원을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2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7월 24일 기준 배추(상품) 소매가는 포기당 5436원으로 집계됐다. 10년 전인 2015년 같은 날(2812원)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다.
◇ 여름철 배추, 왜 이렇게 비쌀까
단순히 시간만 흐른 탓은 아니다. 물가 상승, 인건비·생산비 증가 등의 구조적 요인이 있지만, 배추는 특히 기후와 생산 여건에 민감한 작물이다. 배추는 호냉성 작물로, 섭씨 18~20도에서 잘 자란다. 한반도의 여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후다.
여름철 출하되는 배추는 일명 ‘여름배추’로, 봄배추보다 재배 환경이 더 까다롭고 병해충에 취약하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7월은 봄배추 출하가 끝나고 여름배추로 바뀌는 과도기”라며 “생산지가 고랭지로 올라가고 물량도 제한돼 가격 상승이 반복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위승환 국립원예특작과학 농업연구는 여름배추의 핵심은 크기나 품질보다 ‘병해충 저항성’”이라며 “반대로 가을로 넘어갈수록 실속있는 배추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름 배추는 11월에 나오는 가을배추와 비교하면 포기당 무게가 최대 1,5배까지 차이나기도 한다”며 “봄·여름배추는 생육 기간이 60~70일이지만, 가을배추는 80~90일정도까지 키우는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 재배면적 늘어도 생산량은 적어…구조적 불균형
KREI가 이달 초 발표한 관측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노지 봄배추는 3621헥타르(ha)에서 27만 3000톤 생산된 반면, 여름배추는 3697헥타르에서 24만 9000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면적은 더 넓지만, 생산량은 줄어든다.
여름배추는 해발 600m 이상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고, 수확도 균일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소수 지역에서 적은 물량이 출하되는 구조 자체가 가격 불안 요인이다.
게다가 저장성도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배추는 약 60일간 보관 가능한데, 이 기간을 지나면 상품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봄배추를 6월에 저장했다 해도 8월부터는 물량이 바닥나는 셈이다.
◇ 추석 10월이면 ‘숨통’?…하지만 9월 수급은 여전히 불안
올해 추석은 10월 6일, 역대급으로 늦은 편이다. 이는 배춧값엔 긍정적 변수다. 추석 수요가 몰리는 9월 중순까지 가을배추가 일부 조기 출하될 가능성이 있고, 늦은 여름배추도 출하 시점을 맞출 수 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10월엔 늦은 여름배추에 더해 이른 가을배추도 출하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급에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9월까지의 수급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2022년(추석 9월 10일)과 2023년(9월 17일)엔 포기당 배추가격이 1만 원을 넘어서며 ‘금(金)추’라는 말까지 나왔다. 올해도 김장을 앞두고 저장 물량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여름배추의 공급이 제한되면 다시 급등할 가능성도 있다.
◇ ‘기후위기+수급불안’ 반복되는 구조…정부 대책 실효성은?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와 병해충 확대가 배추와 같은 민감 작물의 수급 불안정성을 가속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존에는 “날씨만 받쳐주면 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엔 연례적인 폭염과 집중호우, 병충해로 인한 생산 불확실성이 상수가 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추석 전 공급안정대책을 내놓겠다는 방침이지만, 실제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안정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