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경기도교육청은 ‘고등학생 역량 강화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사회진출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올해부터 372억원을 투입, 도내 고교 3학년 학생들의 운전면허 취득비 지원 등 학생이 주도적으로 선택한 교육활동과 자격증 취득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1인당 1개 자격에 한해 최대 30만 원까지 지원한다. 대상자는 도내 12만 4000여명의 고교 3학년 재학생들로 운전면허, 어학,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실비를 지원한다. 기존엔 실업계고 재학생을 대상으로만 시행하던 사업을 올해부터 일반고, 자율고, 특성화고 등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확대했다.
도 교육청은 학생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성과 실효성을 높여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운전학원연합회 등 비영리 단체와의 업무협약(MOU)을 맺어 학생이 보다 쉽게 운전면허와 같은 실질적 기능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임태희 도교육감의 말처럼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사회 기초역량을 갖추고 자신감 있게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은 맞다. 따라서 역량 강화 지원 사업이 “학생들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임 교육감의 생각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일선 학교현장에서는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경기신문(관련기사: 4일자 1면, ‘입시 상담도 벅찬데 운전면허 행정까지…’)에 따르면 입시 지도와 상담으로 과중한 업무를 떠안고 있는 교사들에게 대규모 행정 절차까지 떠넘겼기 때문이다. 신청 접수, 학부모 민원 대응, 학원 계약 등 모든 행정이 학교 몫이다. 가뜩이나 두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수능시험에 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교사들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이달부터 대학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된다. 따라서 학생들의 개별 상담과 원서 검토 등의 업무로 고3 담임교사들은 심야 근무가 일상이 되고 있다. “입시 지도도 벅찬데, 교육과 무관한 행정 업무까지 떠맡으라는 것은 학교를 방치하는 것”이라는 불만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책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교육청의 교육활동 지원 예산은 2년 만에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그런데 운전면허 취득 지원에 372억 원이 배정됐으니 “교육 본연의 영역을 외면한 전형적 보여주기식 행정”이란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에 경기교사노조가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교육청이 고교 3학년생 자격증 취득사업이 혈세 낭비 사업이라며 사업예산을 전액 환수하라고 촉구했다. 사업을 중단하라는 요구다. 지원금을 지자체로 이관하고 바우처 형식으로 지급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송수연 위원장은 “이 사업은 교육과 무관할 뿐 아니라 학교 현장에 혼란과 피해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고3 교육의 본질인 맞춤형 진학 상담과 취업 지도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이날 도내 한 고교 교사의 한탄을 도교육청이 흘려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로 수능이 71일 남았다. 지금 고3 담임들은 수능 원서 접수와 수시 상담, 학생부 점검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고,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사는 “고3 담임의 대입진학 관련 학생 상담과 원서 접수 등의 행정업무로 1분 1초가 아까운 이 시기에 경기도교육청이 고3 교사들에게 운전면허 학원 계약, 입찰, 정산 업무 관련 지시 하는 것이 과연 교육을 하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공교육의 본질은 ‘학생의 학습권 보장’이 공교육의 본질이지 ‘운전면허 행정’이 아니라는 그의 말은 옳다. 교사가 학생 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이 교육청의 임무인 것이다. 교사의 행정 부담을 제거하고, 운전면허 지원은 지자체로 이관해야 한다는 한 학부모의 주장을 도교육청이 흘려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