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복싱 금지령이 내려진 1937년 경성. 억눌린 시대의 공기를 가르며 두 청년이 링 위에 선다. 하나는 무패 기록을 지닌 냉소적인 천재, 다른 하나는 매번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신참이다.
초연 뮤지컬 조선의 복서가 11월 9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작품은 ‘조선권투구락부’를 배경으로 무패 복서 이화와 연패에도 굴하지 않는 신참 요한의 대결을 그린다.
이화는 질 가능성이 있는 경기를 애초에 피하며 무패를 지켜온 현실주의자다. 까탈스럽고 고집이 세지만 강압적인 아버지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는 나약한 청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과 정반대인 요한을 만나면서 두려움과 자존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요한은 고아 출신으로 어린 자식을 홀로 키우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인물이다. 패배가 이어져도 다시 링에 오르며 “오늘은 져도 내일은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을 실천한다. 무패와 연패, 두 상반된 청년의 삶은 그 자체로 한 시대 청춘의 초상을 드러낸다.
이들의 이야기는 25년 후로 이어진다. 작가 최마리아는 신문에 ‘조선의 복서’를 연재하며 잊힌 이름을 다시 불러내려 한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인기도, 명성도 아닌 오직 진실이다. 하지만 경찰 장명이 연재 중지를 요청하며 이야기는 또 다른 갈등에 맞닥뜨린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액자식 서사는 단순한 스포츠 드라마를 넘어 기록과 진실, 기억과 망각이라는 주제를 무대에 끌어올린다.

무대 연출은 복싱 특유의 긴장과 박진감을 살려낸다. 실제 권투 링을 형상화한 구조물이 무대 곳곳에 자리하고 여러 방향에서 쏟아지는 조명이 링의 밀폐된 긴장감을 표현한다.
배우들의 동작은 실제 권투 동작보다 안무처럼 구성돼 관객의 눈앞에서 한 편의 무용극처럼 펼쳐진다. 주먹과 발놀림의 리듬은 음악과 조명과 호흡을 이룬다.
출연진은 이화 역에 송유택·이종석·김기택, 요한 역에 신은총·이진혁·박준형, 마리아 역에 류비·한수림·이한별, 장명 역에 이한솔·박상준·김재한이 이름을 올렸다. 네 명의 인물을 각기 다른 조합으로 무대에 올리며 공연의 색깔은 회차마다 새로운 변주를 보여줄 예정이다.
뮤지컬 조선의 복서는 “사각 링 안의 드라마, 위험한 시대, 짜릿한 승부”라는 슬로건처럼 청춘의 도전과 좌절을 응축한 무대로 자리매김한다. 억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싸웠던 청년들의 이야기와 잊힌 이름을 다시 부르는 무대는 오늘의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공연 시간은 화·목·금요일 오후 8시, 수요일 오후 4시와 8시, 토요일 오후 3시와 7시, 일요일과 공휴일 오후 2시와 6시다.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없이 105분이며 관람 등급은 12세 이상이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