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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3만 명이 외친 ‘조선독립만세’…잊혀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날

학생 주도 최대 항일 시위 불구 전국 기념식 실종…참가자 200명 아직도 미서훈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일제강점기 학생들이 주도한 최대 규모의 항일 시위였다. 그러나 96년이 지난 오늘,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이름만 남은 채 전국적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정의감으로 타올랐던 항일의 함성

 

1929년 10월 30일, 호남선 통학열차 안.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여학생들을 희롱하자 이를 말리던 광주고등보통학교 한국인 학생들과 시비가 붙었다. 일본 학생들이 “조선인 주제에”라며 폭언을 퍼붓자 충돌이 일어났고, 출동한 경찰은 일본 학생 편을 들며 한국 학생들만 폭행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학생 다툼으로 끝나지 않았다. 11월 3일, 일본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 간 충돌이 재발하면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조선독립만세’, ‘일제 타도’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이 시위에는 광주농업고, 전남사범학교, 광주여고보 등 학생과 시민 3만여 명이 동참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운동이었다.

 

이후 학생들의 시위는 목포·나주·서울 등 전국으로 번졌고, 1930년에는 만주·중국·러시아·하와이 등 해외 한인 사회로까지 확산됐다. 조선의 독립 의지를 다시 일깨운 상징적 운동으로 평가받는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이름만 남았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전국 규모 항일운동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 날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광주학생운동기념회관이 매년 자체 기념식을 열고 있지만, 전국 단위 공식 행사는 사실상 전무하다.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별도 기념행사를 여는 곳도 드물다. 지난해에는 광주시교육청이 단독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전국적 차원의 학생독립운동 기념식이 사라지면서, 역사의 의미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당시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에 대한 후속 조치도 충분하지 않다. 광주 지역에서만 580명이 퇴학당하고 80여 명이 투옥됐지만, 이들 중 약 200명은 아직도 독립운동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주도 인물인 장재성 씨도 미서훈 상태다.

 

정치적 이유로 지워진 기념일의 역사

 

광주학생항일운동은 1953년 ‘학생의 날’로 제정됐으나,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3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폐지됐다. 당시 정부가 학생 시위와 민주화 운동 확산을 경계한 조치로 알려져 있다.

 

1984년 ‘학생의 날’로 부활했지만, 운동의 본래 의미는 희석됐다. 이후 2006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광주학생항일운동을 기리는 전국적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잊히면 다시 되풀이된다”

 

지난달 31일, 국가보훈부는 ‘2025년 11월의 독립운동’으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선정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학생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파급력에 비해 국민적 관심이 부족하다”며 “교육 현장 중심의 기념사업이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역사교육 전문가들은 광주학생항일운동을 단순한 지역 사건이 아닌, 학생이 주도한 전국적 독립운동으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전문가는 “한국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라는 명칭이 모호해 오히려 운동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며 “당시 학생들의 용기와 연대 정신을 현 세대에 맞게 되살리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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